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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51호

■ 시선집중

양덕 수해지구 수재민의 90%가 여전히 초막살이-2006년 12월

양덕 수해지구 수재민의 90%가 여전히 초막살이

그동안 수해 지역에서는 살림집 복구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복구 장비와 물자의 태부족으로 살림집 복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수재민의 약 90%가 여전히 비닐 천막집, 산중 초막집, 또는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로 살아가고 있다. 새로 지은 집에 입주하게 된 운 좋은 주민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새 살림집이라고 들어갔으나 문과 벽체, 지붕만 있을 뿐 기본적인 살림살이는 고사하고 바닥재나 벽지, 창문 등 제대로 갖추어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집안을 하나도 꾸리지 않고 벽체와 지붕 문짝만 달아주고 살라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집을 꾸리고 사는가?”라며 주민들이 항의해 결국 신규 살림집 배정이 중지되기도 했다.

성홍열 감역지역 꽃제비들 격리조치-2006년 12월

성홍열 감염지역 꽃제비들 격리조치

지난 10월 량강도 지역에서 발생한 성홍열이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전염되면서 엄격한 통행 통제가 실시되고 있다. 특히 감염지역으로 판명된 지역에서는 아예 기차표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량강도 혜산에서 성홍열을 감기로 오진해서 제 때에 대처를 못해 감역 지역이 빠른 속도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혜산에 갔던 꽃제비는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살 길을 찾아 함경북도 길주까지 갔다가 그제서야 병명을 알게 되었다. 이 꽃제비는 감염되었다는 이유로 20일 이상 격리되어 있는 동안 매를 맞으며 박해를 당했다.

현재 성홍열은 한꺼번에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두 사람이 나으면 다음 사람이 앓는 식으로 계속 전파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누가 감염자인지 짐작하기 힘든 상태이다. 현재 량강도 혜산에서부터 문천, 문덕, 평성, 자산, 봉학, 김책, 남포, 길주, 김정숙군, 김형직군, 청진시 포항구역과 송평구역, 회령시 금생리까지 퍼지고 있다. 감염지역의 기차역에서는 차표 판매를 중지하고 있다. 당국의 비상방역위원회가 예방 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항생제가 부족해 약 공급은 일단 확인된 환자에 한 해 페니실린을 주사하고 있는 수준이다.

겨우 예방 대책으로 마련한 것이 감염에 취약한 꽃제비들의 우선적 격리이다. 이러저리 떠도는 꽃제비들을 집결소에 보내고 이동을 통제하는 등 꽃제비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냉한 곳에서 새우잠을 자야 하는 꽃제비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꽃제비들이 달아나면 성홍열이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집결소에서는 이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옥처럼 보초를 세워 감시하고 있다. 전염병이 광범위하게 퍼진 지역에서는 꽃제비들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까지 격리하고 있어 주민들의 불편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배급이 없는 가운데 통행을 통제하니 먹을 것을 구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수단방법을 다 써서 몰래 빠져나가 장사를 하러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다보니 전염병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한편 철도성은 러시아에서 두만강으로 원목을 들여오기 위해 성홍열 감염지역으로 운행이 전면 중지된 량강도의 철도 차량을 전부 빼내어 두만강 쪽으로 보내고 있다.

■ 경제활동

함흥시 강도 극성

함흥시 강도 극성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도둑과 강도가 전국 어디서나 들끓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함흥시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함흥시 흥남지구는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구역인데, 전기가 없어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강도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11월 4일 저녁, 흥남 비료공장에 다니던 두 노동자가 캄캄한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도중 네 명의 폭력배에게 매질을 당하고, 각자 끌고 가던 자전거와 소지한 현금 약 7천여 원을 빼앗기는 사건이 일어났다. 뒤늦게 보안서에 신고했으나 도둑을 잡을 수 없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올해 59세로 정년을 앞두고 몇 년 동안 벼르고 별러 2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자전거를 샀다고 한다. 골목이 껌껌하다보니 도적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며, 보안원에게 말해봤지만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내를 다 돌아다니며 자전거를 찾아봤지만, 아마 벌써 다른 지역에 넘겨졌을 것이란 말을 듣고는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주민들은 ‘그래도 목숨 부지한 것을 다행으로 알라.’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최근 이런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어 주민들이 부쩍 불안해하고 있다. (51호)

석탄 생산 저하로 전력문제 악순환 거듭

석탄 생산 저하로 전력 문제 악순환 거듭

평안남도 성천군에 있는 탄광들도 다른 지역의 탄광과 마찬가지로 석탄(무연탄) 생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동발목과 화약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시로 정전되다보니 정상적인 채굴을 할 수가 없다. 지하수를 퍼내야 채탄할 수 있는데, 전력이 없어 양수기를 돌리지 못하는 바람에 물을 빼낼 수가 없어 생산이 중단된 상태이다. 전력 문제를 풀려면 석탄을 생산해서 발전소를 돌려야 하는데, 전기가 부족하다보니 석탄을 캐지 못하고 결국 발전소도 돌아가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평양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평양 화력발전소와 동평양 화력발전소, 북창 화력발전소를 비롯해 전국의 화력발전소들의 전기 생산량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평양시는 한때 평양 발전소에서 50만 KVA, 동평양 발전소에서 10만 KVA, 그리고 북창 화력발전소에서 10-20만 KVA를 지원받아 전체 약 70-80만 KVA를 공급받았으나, 지금은 공급량이 약 30-35만 KVA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설비가 워낙 낙후한데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에서 공급받던 중유 50만톤이 끊긴 상태라 발전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평양화력발전소는 20-25만 KVA, 동평양 발전소는 5만 KVA 가량 생산되면 잘 나온 것이다. 함경북도의 청진 화력발전소는 현재 보일러 9기 중의 1기만 가동 중이다. 함경북도는 평양시보다 전력 공급 사정이 더 좋지 않아 공급량이 12만 KVA에서 8만 KVA로 감소했다. 전기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공급량은 갈수록 줄어들어 전국적인 전력 비상이라 할 만하다.

한편 성천 탄광 노동자들은 폐광에 들어가 미리 봐 둔 석탄을 캔다. 수직갱을 타고 수동으로 내려갔다가 머리 조명등에만 의지해 곡괭이로 캔 뒤, 석탄을 등에 메고 다시 힘들게 수직갱을 타고 올라온다. 전깃불도 없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데다 안전장치도 취약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막장 안에서 화약도 없이 곡괭이로 석탄을 캐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육체적으로 너무도 고달픈 일이지만, 캐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어 고생을 기꺼이 감수한다. (51호)

몰래 석탄 훔쳐도 벌금 또는 추방형 집행

지난 11월 15일 인민보안성에서 각지에 내린 전력 관련 포고문 이후 단속과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 각 지역의 보안서는 전기를 몰래 사용하는 가정을 조사해 벌금을 물리고 심한 경우 추방까지 하고 있다. 전기를 개인적으로 끌어들이는 집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석탄을 훔쳐도 처벌하고 있다. “전력생산용 석탄과 중유, 자재와 발전 및 변전설비를 생산, 보장, 수송하지 않거나 훔치거나 비법처리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1번 조항을 어겼다는 이유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해마다 겨울이 되면 꽃제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석탄을 훔쳐 팔아 생계를 유지하거나 난방용으로 생활해왔던 서민들로선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석탄 한 양동이에 900-1,300원으로 쌀 1kg 가격보다 더 비싸다. 돈 있는 사람들이라도 석탄을 한 번에 500kg씩 구입하려면 2만-2만 5천 원 가량 주어야 한다. 석탄을 꿈도 꾸지 못하는 일반 서민들은 옥수수대나 볏짚 등을 태워 겨우 밥을 지어 먹는다. 밥 지을 땔감 상황이 이 지경이니 난방까지 신경 쓸 여유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은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이불 밑에 더운 물을 담은 물통을 넣어 한기를 쫓으며 잠자리에 들고 있다.

전압 낮아 콤팩트 전등 무용지물

북한 당국은 올해 들어 전력 부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평양시는 물론 전국 각지로 조명용 전등을 콤팩트 전구로 교체한 바 있다. 콤팩트 전구가 백열등 전등에 비해 전력 소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적극 권장했다. 그러나 전력 공급 사정이 계속 악화되면서 전압이 낮아 콤팩트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220V가 정상 전압임에도 실제 전압은 70-130V 선에서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기가 들어오는 각 가정에서는 콤팩트 전구를 몰래 다시 옛 전등으로 교체하는 사례마저 생기고 있다. 평양을 비롯해 평성, 청진 등 주요 도시에서는 하루 1-2시간가량 전기가 들어오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열흘이 넘도록 전깃불 한 번 보기가 힘들 지경이다. 다만 가을 추수 후 탈곡 문제로 일부 농촌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고 있으나, 이 또한 하루 10시간 이상 정전이 기본이다. 이에 농민들은 벼를 손 타작하거나 발로 돌리면서 벼를 터는 족답기를 다시 만들어 타작하는 형편이다.

함경북도 길주에서 문둥병 환자 발견

성홍열이 퍼지면서 국가 비상 방역위원회가 조직된 이후 11월 중순 함경북도 길주에서 문둥병(나병, 한센병이라고 함) 환자가 여러 명 발견되어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반세기 전에 없어진 것으로 알았던 병이 다시 퍼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자, 노인들은 “일제 때에도 문둥병환자는 사람 잡아먹는 병이라 하였는데 이제 이 병까지 생기면 서로 잡아먹을 내기를 하지 않겠나. 문둥병 환자는 내장이 다 헐어빠지는 불치의 병이라 일제 때에도 문둥병 환자는 다 섬에 격리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되어 이 땅에 저런 병이 또 생겼을까? 아마 이제는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병에 걸려 죽어야 할 시기가 오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새로운 병이 또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대부분은 한센병에 대해 정확히 잘 모르기 때문에 막연한 공포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북한에서는 한센병 환자들을 그동안 격리 치료해왔기 때문에 한센병은 일반 주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기발견된 환자들은 공민증을 회수 당해 공민권이 박탈되며, 가족과 떨어져 사실상 강제수용이나 다름없이 격리 구역에 들어가게 된다. 평양시는 승호구역에 한센 전문 치료 병원이 있는데, 조기발견된 환자들이 이곳에 격리된다. 이 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의료시설과 체계가 너무도 열악하고 낙후해지다보니, 점점 환자의 조기발견이 늦어져 이제는 일반 주민들이 알아볼 정도이다. 이에 그동안 사라진 줄 믿었던 병이 새롭게 출현한 것으로 오해하는 주민들이 많은 것이다.

비상 방역 위원회에 동원된 청진시 거주 의사는 “전 세계에서 무상치료 하는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고 하더니 그래서 병도 무상으로 제일 먼저 생기는 것 같다.”며 냉소했다. 40원짜리 페니실린 주사를 500원에 팔고 있는데 무슨 무상치료, 예방치료라고 할 수 있겠냐며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병이 돌면 가장 먼저 죽을 사람은 추위와 배고픔에 늙어가는 사람인데, 이렇게 자꾸 없던 병들이 새로 생겨나면 없는 사람만 더 힘들어진다는 현실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스물 세 살 처녀 가장의 소박한 꿈

함흥시 흥남구역에는 스물 세 살의 아가씨가 홀아버지를 부양하며 살고 있다. 아버지가 흥남 비료공장에 다니고 있지만 실질적인 부양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먹을 게 없어 어머니와 오빠를 잃고,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부터 오로지 돈 버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살림살이라고 해야 18평의 집에 가마솥 2개, 밥과 국그릇 12개, 알루미늄 냄비 1개, 수저 8벌 정도에 이불 두 채가 전부이다. 가전제품으로는 흑백 TV가 유일한데 그녀에게는 보물 1호이다. 이 살림살이를 갖추기까지 그녀가 한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는 12살에 어머니와 오빠를 잃고 직장밖에 모르는 아버지 손에서 사느라 못해본 일이 없습니다. 쑥도 먹어보고 도토리도 먹어보고 논판의 벼 뿌리로 만든 국수도 먹어보았습니다. 목숨을 부지하자니 중학교도 못 나오고 생활전선에 나섰습니다. 산나물 장사와 남의 집 삯일도 해주면서 하루 1,000원이면 1,000원, 강냉이면 강냉이, 감자면 감자, 호박이면 호박, 무엇이든 얻어 와서 아버지 시중을 하고 장사 밑천을 잡아보려 했는데 지금까지 안 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바다에 나가 고기 짐도 날라보고 낙지(오징어)도 말려 보았지만 돈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고생하는 내가 불쌍하다고 혼자 속 태우면서 가끔 술로 달래며 살고 있습니다. 나도 새 옷을 사 입고 신발을 사 신고 거리도 다녀보고 싶지만, 그런 건 다 꿈일 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돈 벌러 다니면서 겪어보지 않은 일이 없다고 했다. 고사리 손으로 남의 집 김장 김치도 담구고, 가을걷이는 물론 배고프면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짐 끄는 일도 해보았다. 나이가 들어 여자의 모습으로 성숙해지면서 돈을 흔들며 자신을 노리개 취급하려는 남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갖은 수모를 당할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홀로 남겨질 불쌍한 아버지 생각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의 꿈은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다거나 손풍금을 타며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나를 사람답게 대해주고 새 옷에 새 신발을 신겨주는 사람, 아버지를 편히 해줄 사람이 있으면 몸과 마음 다 바쳐 받들고 싶습니다. 이게 내 꿈의 전부입니다.” 이것이 소박하지만 이루기가 점점 어렵게만 보이는 스물세 살 어린 처녀 가장의 꿈이다.

“땔 것 없어 밥 못 먹고 추운 방에 자다니 이게 말세 아닌가?”

함경북도 김책시의 한 노동자는 전력 포고문 이후 전기 사정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어 땔 것도 먹을 것도 없게 되자 친척 집을 찾았다. 김책시에는 그나마 간간이 전기가 들어와 석탄이나 다른 땔 것이 없어도 밥은 해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전기선마저 중간 중간 잘려나가 전기가 다시 들어올 가능성마저 없게 되자 너무 막막해 집을 나선 것이다. 그의 아내는 시골에 있는 친정집에 식량을 얻어 보려고 떠났다. 아내가 떠난 후 혼자 자려니 집이 너무도 추워 밤에 잠자기도 힘들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아 세수도 못하고 지내다가, 굶주림과 추위에 못 이겨 삼촌 집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밥 한 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행색이 영락없는 꽃제비 몰골인데다 전기가 완전히 끊긴 뒤 땔 것이 없어 추위에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는 설명에 “왜 세상이 점점 거꾸로 되는지 모르겠다. 혁명을 잘 하면 이밥에 고깃국 먹고, 비단옷에 기와집 쓰고 살 수 있다는 말에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만 살아왔는데 이제는 땔 것까지 없어서 밥도 못해 먹고 추운 방에서 자게 되었으니 이게 말세가 아니냐?”라는 깊은 탄식만 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