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활동소식지(남과 북이 설 명절에 함께 만든 만두)

화성 조민경활동가

 2024년 설 명절 방문을 준비하며, 새터민들에게 고향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간의 일상방문을 통해 새터민들이 고향과 고향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화성지역에 인연이 닿은 새터민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아 여러가지 질병으로 힘들어 합니다. 홀로 생활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 김장이나 고향 음식을 직접 요리해 먹는 경우가 드물기도 합니다.
특히, 남한 음식은 달고 짠 양념이 많아 입에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지난 번 김장 담그기 행사에서 고향에서 담궈 먹던 명태 김치에 환호하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설 명절 방문을 위해 마련할 음식은 떡국과 북한식 만두입니다.
평소 남한식 만두는 입에 안 맞아 중국 만두를 드신다고 하기에 북한식 만두를 빚어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에서 명절음식을 마련하느라 북적북적 했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기를 바랐습니다.
새터민 한 분이 집을 내어주어 의기투합 한 새터민 네명과 활동가 여섯명이 모여 만두를 빚었습니다. 새터민과 활동가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새터민 분에게 만두 빚기에 필요한 음식 재료를 알아내어 좋은벗들 활동가들이 재료를 구매 했습니다. 만두 소는 새터민이, 심부름/설겆이/재료 준비는 활동가가 담당했습니다.
북한식 만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고 양배추, 돼지고기, 두부, 파기름이 주 재료가 됩니다.

 설명절 방문 전날인 2월 2일(금) 오전10시부터 재료를 다듬고, 썰고, 만두소를 버무리며 웃음 꽃이 피었습니다. 도마소리, 웃음소리로 꽉 찬 집은 활기와 온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노는 것인지 만두를 빚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무척 재미 있었습니다.

 새터민이 만두를 처음 빚는 활동가에게 북한식 만두 빚는 법을 찬찬히 가르쳤습니다.
예쁜 마음을 닮은 예쁜 만두입니다.
만두를 빚으며 찜찔 준비도 동시에 합니다.
만두를 찌는 20분이 이렇게 길 줄이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만두를 호호 불며 맛보니 정말 담백하고 맛있었습니다.
맛만 본다 했지만 배가 부를 정도로 자꾸 손이 갑니다.

 만두는 서른 가구마다 도시락 두개씩 선물할 예정으로 총 400개 정도 빚으려 했는데 만두 소의 양 조절에 실패해 700개 넘게 빚었습니다.
거의 두배 가량 만두를 더 빚게 되어 예정된 시간을 훌쩍 지난 저녁 6시까지도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힘들만도 한데 한 도시락씩 더 드릴 수 있게 되었다며 새터민도 활동가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정 많은 한민족의 피가 같이 흐르고 있구나 느껴지니 마음도 갓 쪄진 만두만큼 뜨거웠습니다.

 겹겹이 쌓인 포장된 만두를 보니 흐뭇했습니다.
받는 분들이 기뻐하시길 바라는 마음, 만두가 굳기 전에 전달하고픈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화성지회는 11개로 조를 짜서 30가구를 방문했습니다.
싱싱한 표고버섯 상자와 떡국 떡, 그리고 만두로 보자기가 풍성합니다.

 명절이 너무 싫어 차라리 명절연휴에는 일만 한다고 하시는 분도 저희가 선물한 만두를 보며 남편과 같이 먹고 싶다고 좋아하십니다.
선물한 만두를 좋은벗들 활동가는 못먹어 봤을거 아니냐며 쪄서 내어 주시는 분도 계시고, 북한음식을 대접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만두 도시락에 고향 음식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처음 방문을 하는 활동가들의 걱정은 만두와 북한 음식 이야기로 이미 잊혀졌다고 합니다.
너무나 작은 선물에 “이렇게까지 우리를 생각해 주나…”하는분도 있었고
양배추 만두를 처음 본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작은 만두 하나가 새터민분들에게는 오래전 고향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좋은벗들 활동가들에게도 어린 시절의 명절 추억을 되새기게 했습니다.
눈시울을 붉히며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하는 아픔을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
활동가들에게 과일, 과자라도 내어주려 하는 마음이, 정이 오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설 명절방문 이후 화성지역 활동가들은 새터민들이 언니, 오빠, 친척 같았다고 합니다.
세련된 선물보다 정이 듬뿍 느껴지는 선물 꾸러미가 좋았다고도 하고,
봉사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습에 많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고도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같았는데 실제 만나보니 친근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활짝 열렸다고도 했습니다.
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새터민들의 생활을 유튜브로 찾아보는 활동가도 있었습니다.

 설 명절 방문으로 새터민의 아픔이 나에게 전해지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모습 속에서 나의 일상을 새롭게 보기도 했습니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마음을 보게 해준 새터민분들께 감사했습니다. 분단의 아픔을 직접 느껴보고, 북한 주민들이 굶주려 죽어갈 때 외면한 것을 참회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이웃으로, 그들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누구와도 좋은 벗이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