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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벗들과 14년 간의 동행

사진, 글_안산 이동림

활동가 이야기, 그 첫 번째 주인공은 14년 동안 좋은벗들과 함께해 온 이동림 활동가입니다. 글을 읽으며 오랜 병을 이겨내고 찾아온 평온함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받은 온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는 활동가님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안산에서 시작해 인천·경기 곳곳을 누비며 밥상전달식, 가정방문, 산타 행사, 한국어 교실 지원까지 이웃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달려간 이동림 활동가. 서툴렀던 첫걸음부터 이웃과 함께 웃고 울었던 14년, 그 따스한 동행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2025년 강화도 역사기행 – 활동가 이동림님 >

삶의 전환점에서 만난 좋은벗들

좋은벗들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려면 제법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병명을 모른 채 살다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류머티즘 관절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속되는 통증으로 24시간 괴롭고, 쉽게 지치고 기력이 없어,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늘 우울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저에게 맞는 치료법을 알게 되었고, 관절염의 통증과 면역력 이상 반응으로 늘 시들시들하던 몸이 30대 초반에 증상이 완화되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적은 돈이지만 좋은벗들에 다달이 기부를 시작했고, 소식지를 정기적으로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식지에 실린 글 가운데 저와 같은 지역인 안산에 사는 활동가의 밥상전달식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주고받으며 밥상전달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이 저에게 함께 참가해 보지 않겠냐며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했고, 약속한 날 약속한 장소로 나갔습니다.

타인의 삶에 눈을 뜨게 된 순간 : 밥상 전달식

그날 밥상전달식에 참가한 북한이탈주민과 활동가들에게 좋은벗들 소개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참여했던 저에게 그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리 뒤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북한의 식량난과 북한이탈주민들이 겪어 온 현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 앞이라 울음을 삼키며 애써 충격을 감추긴 했지만, 모임이 끝난 뒤 진행자인 지인과 마음을 나누는 자리에서 느낀 그대로를 털어놓았습니다.

제 나누기를 들은 지인은, 본인이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밥상전달식을 더 진행하기 어렵게 되었다며 저에게 그 일을 맡아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마침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저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그 뒤로 밥상전달식과 가정방문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 당시 안산에는 활동가가 저 뿐이여서 혼자 방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정방문이나 밥상전달식을 갈 때면 네 살배기 조카와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 친구인 옆집 할머니를 모시고 다녔습니다.(바로 위 언니가 직장을 다녀 어머니가 조카를 돌보시던 때였는데 그때 아기였던 조카가 지금은 고3이 되었습니다.)

밥상전달식에서는 한국에 무사히 오신 걸 환영하며 밥상과 그릇을 선물로 드리고 좋은벗들을 소개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께서는 정말 고맙다며, 열심히 살아 꼭 성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흙 한 삽 떠붓는 일을 하지 못했는데 반겨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많으셨습니다. 그 말에 마음이 찡하고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혼자에서 여럿으로, 활동가들을 모으다

저는 안산은 물론 수원과 군포, 안양까지 다니며 더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인천·경기서부 지역 좋은벗들 담당이 되었습니다. 방문하는 가정이 늘어나니 함께할 활동가를 모으는 일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좋은 이웃되기’ 활동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지역을 다니며 좋은벗들 활동을 알릴 기회가 생겼고,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이 좋은 활동에 함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저처럼 북한이탈주민들의 어려움을 처음 알게 된 분들이 하나둘 함께하겠다고 마음을 내어 주셨습니다.

수원에, 군포에, 안양에, 일산에, 부천에, 인천에, 성남에 좋은벗들 활동가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좋은 이웃되기’ 활동 문의가 들어왔고, 가정방문과 밥상전달식, 좋은 이웃의 날, 산타 행사 등의 활동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안산에서 진행한 밥상전달식 소식을 좋은벗들 소식지에도 싣겠다며 서울에서 손재희 님이 취재를 오시기도 했습니다. 그 날 밥상전달식은 진행하는 장소에 좋은벗들 활동가들로 가득 찬 가운데 진행 되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활동가도 북한이탈주민들도 함께하고 싶어 하며 점점 늘었지만, 정작 제가 사는 안산에서는 활동가도, 북한이탈주민도 좀처럼 반응이 없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호응을 얻지 못해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서 했습니다.

차 안 가득 김치를 싣고

겨울철에 김장을 나눠 먹었으면 좋겠다며 김장김치를 기부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좋은벗들에서 김장 행사를 하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처음 기부해 주신 분은 그뒤로도 해마다 지속적으로 김장김치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김장철에는 제 차에 김치를 한가득 싣고, 그 당시 안양에서 활동하던 황정연 님과 무거운 김치 박스를 낑낑대며 날랐습니다. 그런 서로의 모습에 깔깔대며 이 집 저 집 배달을 했었지요.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한 산타행사

좋은벗들 본부에서 기획한 크리스마스 방문 때는 청년 봉사자들이 산타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수원에서 산타 행사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저와 산타로 변신한 청년들이 어느 한 집에 들어서자,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방안을 방방 뛰어다니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더니 저희에게 다가와 넙죽 큰절을 했습니다. 아이가 어찌나 기뻐하던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니와, 아이의 기쁨에 어안이 벙벙해하던 청년들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청년들은 그날 이후, 우리의 작은 방문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큰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게 기뻤다며 이후에도 함께 하겠다고 나누기를 했습니다. 지금도 제 기억 속에 행복한 추억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33명의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한 동해 여행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2015년 가을 안산, 군포, 안양 지역에 사시는 북한이탈주민들과 강릉 경포대로 다녀온 여행입니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그분들의 말씀에 꼭 바다를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나들이를 위해 강릉에 사는 활동가들이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레크레이션을 할 만한 장소와 입장 시간을 알아봐 주시고, 경포대를 해설해 줄 해설가 섭외에 간식까지 넉넉하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지역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강릉의 김미라 님과 여러 활동가들께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생생합니다.

경포대에 도착한 후, 행사 현수막을 준비하지 못했던 저는 A4 용지에 손팻말이라도 인쇄하려고, 일면식도 없는 경포대 주변 인테리어 가게에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행사의 취지를 간략히 말씀드리고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사장님은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인쇄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고 나오면서 사장님이 주신 명함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너무 고마워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느닷없는 저의 부탁을 들어주신 고마운 분이라, 왠지 그 명함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시 경포대에 가게 되면 그 가게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돌이켜 보면 활동이 어설프기도 했지만, 오직 열정 하나로 용감하게 부딪혔던 것 같습니다.

그날은 볕이 따뜻했습니다. 모래밭에서 한참을 놀고 간식도 먹고, 물에 들어가기 어중간한 날씨였지만 들어갔던 몇몇은 오들오들 떨기도 했습니다. 안산 활동가들이 준비해 준 푸짐한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며 그렇게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초기에 반응이 없던 안산에서 지원 해 주는 활동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으로 다들 피로한 상태여서 잠을 청했습니다. 어찌나 곤하게 주무시던지…그 때 버스 안에서 느꼈던 평온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잠에서 깬 뒤 그날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한 북한이탈주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평온하게 잠을 자본 건, 북한에서 집을 떠나 남한에 온 이래로 몇 년 만에 처음이라고요. 우리의 활동이 그분들에게 그토록 따뜻하고 편안한 위로가 되었다는 말씀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 좋은벗들 소식지 2015년 11, 12월호 – 통권 100호에 실린 글 >

2023년, 고려인 이웃들과 다시 이어지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는 다른 활동에 집중하느라 예전만큼 활동하지는 못했습니다. 바쁘게 지내다 보니, 과거의 인연들과도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 사이 안산에도 활동가들이 많아지고 (제가 발굴한 분들은 아닙니다) 좋은벗들과 인연을 맺은 북한이탈주민 가정도 늘어났습니다.


2023년부터 다시 이어진 좋은벗들과의 인연으로, 지금은 안산에 거주하는 고려인 가정을 방문하는 활동과 한국어 교실 진행을 지원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만큼은 아니어도, 고려인들 역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분들이 한국에 잘 정착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고려인 가정 방문 >
< 고려인 한국어 수업 스텝으로 참여중 >

서툴렀던 기억을 넘어, 감사와 평화의 마음으로

좋은벗들 활동 특성상, 사진을 보관하거나 글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앞서 말한 몇 개 사례 외에도 참 많은 사람과 많은 활동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돌아보면 마음은 앞섰고, 그만큼 감정이 앞서 미숙했습니다. 의욕이 앞선 만큼 긍정적인 활동도 많았지만, 본의 아니게 활동가나 북한이탈주민들께 상처를 주거나 관계가 어긋난 적도 있었습니다. 내 실수가 무엇이었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던 때도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하는 분도 계시고, 스쳐 지나간 분들도 계십니다. 이해하고 호응해주며 함께해 준 분도 계시지만, 외면하고 냉대한 분도 계셨습니다. 고마운 마음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고맙지 않은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실까! 문득 궁금하고 보고 싶습니다.

좋은벗들 활동 덕분에 제 마음과 생각이 1cm라도 자라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남과 북이 하나가 되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하기를, 홀로 외로움 속에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없기를, 더 이상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그리고 이 좋은 일에 세상 모든 사람이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2023 좋은벗들 철원 역사기행 – 스텝들과 함께 >

< 2024년 전망대에서 – 통일축전 합동 차례 촬영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