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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154호

■ 시선집중

대홍단 아이들, 진달래꽃 먹고 죽기도

대홍단군에서는 진달래꽃을 먹고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삼봉중학교에서는 1학년 아이들 중에 9명이 진달래꽃을 잘 못 먹고 중독에 걸려 무리죽음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서 먹지만, 아이들은 배가 고프니까 일단 입에 넣기 바쁘다. 감자 몇 알 먹고도 허기지니까 산으로 들로 나가 뭐든 뜯어먹는데 올 봄엔 진달래꽃을 몇 움큼씩 한꺼번에 너무 많이 뜯어먹다가 중독에 걸려 죽었다. 대홍단 서두구에 사는 장미옥(38세)씨는 “진달래꽃을 광주리로 뜯어와 먹는데 이걸 많이 먹으면 위에 경련이 일어난다. 빈속에 먹으면 독이 있어서 거품이 일어나면서 죽게 된다. 그러니까 어지간히 먹어야지. 나도 진달래 잘못 먹고 속 쓰려 죽는 줄 알았다. 약도 많이 먹으면 죽는 것처럼 그것도 많이 먹으면 죽는다. 어른들이 이 정도면 아이들은 더 말해 뭣 하겠냐”고 했다.

신덕구에 사는 리성자(37세)씨는 “나도 우리 큰 애한테 매일 주의를 준다. 우리 큰 애야 머리가 커서 그러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내가 안 보는 사이 우리 작은 애가 꽃을 함부로 먹을까 봐 걱정이 돼서 작은 애 데리고 다닐 때마다 ‘동생, 꽃 못 먹게 해라’ 몇 번이고 다짐받는다. 우리 큰 애는 학급 애들이 다 죽어나가고 있다고 ‘어머니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부모 없이 혼자 사는 애들이 그렇게 쉽게 죽는다”며 요즘 아이들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 고난의 행군 때가 생각나 소름끼친다고 고개를 저었다.

두꺼비 잡아먹다 죽어간 아이들

량강도 대홍단 삼봉구에서는 두꺼비를 잡아먹다가 죽어가는 아이들이 생기고 있다. 서두수 물가에 늪이 있어 고인 물에 개구리가 많았는데 너무 잡아먹어 요즘엔 개구리가 없고 대신 두꺼비가 나오는 철이라 두꺼비를 잡아먹고 있다. 예로부터 두꺼비 독을 잘만 쓰면 암 치료에 좋다는 얘기가 있으나, 독을 제거하지 않고 잘 못 먹으면 죽기도 한다. 영양실조에 걸려 면역력이 떨어진 아이들이 먹으면 치사율이 높아진다.

대홍단 삼봉구에 사는 한명선(43세)씨는 “개구리 알이 갓 낳은 건 독이 없는데 다리 나오고 꼬리 나올 때 독이 생긴다. 개구리로 클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못 먹기 때문에 올챙이일 때부터 조리로 떠서 잡아먹는데, 우리 인민반에 올챙이 잘 못 먹고 식중독에 걸려서 죽은 애가 지난달에만 한 댓명 된다. 그 시기가 지나니까 먹을 게 없어서 이제는 두꺼비가 나오고 있는데, 그것도 개구리처럼 살이 있는 고기라고 생각하고 애들이 잡아서 구워먹었다. 감자에 뿌리가 생기면 독이 있는데 거기다 두꺼비랑 같이 먹으니까 하룻저녁에 애들 대여섯 명이 죽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두꺼비 먹다 죽은 일은 그동안 잘 듣지 못했는데 하루 만에 여러 애들 송장 치우느라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최승철(42세)씨도 “두꺼비 살이라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쭉정이 강냉이 가루랑 섞어 두꺼비 죽을 쒀 먹어보려던 애들이 불에 구워 먹었다가 죽었다”고 했다. 삼봉중학교 어떤 반은 36명의 학생들 중에 영양실조로 죽거나 먹을 것을 잘 못 먹어 죽은 아이들이 지난 두 달 새에만 열 명이 넘었다.

■ 논평

굶어죽는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올해 열일곱살인 상학이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친구들과 감자를 훔쳐 먹겠다고 감자굴에 몰려갔다. 친구들더러 망을 보라하고 감자굴에 들어갔던 상학이는 끝내 올라오지 못했다. 감자의 독성이 강해 숨쉬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잽싸게 가지고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상학이의 시신은 보름이 지나서야 꺼내졌다. 상학이는 두 손에 감자를 꼭 쥐고 있었다.

서두수 강 근처 늪지에서는 개구리를 하도 잡아먹어 개구리 씨가 다 말랐다. 개구리가 자라기를 기다리지도 못해 올챙이를 조리로 떠서 잡아먹기까지 했다. 그러다 올챙이 독에 걸려 죽은 아이들이 생겼다. 개구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두꺼비가 들어섰다. 두꺼비나 개구리나 구워먹으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두꺼비 독에 걸려 죽어갔다. 삼봉에서는 친구들끼리 우루루 몰려 두꺼비를 잡아먹고 그렇게 여섯 명의 아이들이 하룻저녁에 다 죽었다.

열네살 수명이는 내내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부모님이 돈 벌어오겠다고 떠난 뒤 여동생과 둘만 남아 지금껏 버텨온 데는 이웃집 연실이 할머니가 큰 힘이 됐다. 아이들에게 연실이 할머니는 친할머니 이상으로 의지하던 분이었다. 수명이는 동생 수진이와 함께 할머니가 건네 준 건더기 약간과 멀겋게 기름이 둥둥 뜬 닭고기 국을 맛있게 먹고, 그 날 저녁 먹으려고 아꼈던 감자 몇 알을 다음 날 아침 할머니께 가져갔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어린 수명이와 수진이는 믿고 의지하던 사람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 아이들에게 죄가 있는가. 배고픈 땅에 태어나 배고픈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아이들의 죄인가.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는 이 아이들에게는 지금 밥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묻고 싶다. 이 아이들을 도와야 하는가, 돕지 말아야 하는가.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왜 어른들 싸움에, 남북한 정부의 잘못된 기 싸움에 이 아이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혹자는 우리의 소식을 과장됐다고 말한다. 생존력이 높아져서 아사는 없다고도 말한다. 우리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의 소식이 틀리고 그들의 주장이 옳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그렇다면 이토록 애달프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구원 요청을 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두 손에 감자를 꼭 쥐고 죽어간 상학이와 연실이 할머니가 건네준 닭고기 국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갈 수명이, 수진이가 가슴 아프게 눈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남한과 북한 당국자들의 저 답답하고 꽉 막힌 귀에 닿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그 아이들을 대신해서 목이 다 쉬고 핏덩이가 쏟아져 나오도록 계속 도와달라고 외칠 것이다.

죄 없는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려 달라. 하루하루가 급하다. 미국과 중국에서 식량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없다. 제발 누구든지 함께 목소리를 내달라. 굶주리는 아이들은 먹어야 산다. 부디 남북한 당국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죽어가는 아이들부터 살려 달라. 제발 어른들의 죄를 아이들에게 지우지 말아 달라. 굶어죽는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 경제활동

연실이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량강도 대홍단군에 사는 연실이 할머니는 고난의 행군 때 할아버지와 자식들을 여의고 혼자 살아남으셨다. 무척 부지런한 분이라 구부정한 허리를 제대로 펼 겨를 없이 텃밭도 살뜰하게 가꾸시고, 없는 살림에 닭 한 마리 고이 키워오셨다. 달걀을 낳으면 동네에서 옥수수가루라도 바꿔 근근이 끼니를 이을 수 있어 닭을 복덩이라고 부르곤 하셨다. 이곳은 장마당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근처에 역도 없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심심산골이다 보니, 올 봄에 식량이 바닥나면서 할머니의 끼니 사정도 극심해졌다. 결국 할머니의 총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복덩이 닭을 잡아먹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할머니는 닭을 김치움에 저장시키고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불을 때서 우러난 물로 빈속을 달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도저히 참기 어려울 정도로 배가 고프면 한 번 때서 먹고, 그 다음 날 또 먹는 식이었다. 할머니는 ‘이것만 먹으면 이제 끝이구나, 죽는 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우린 물조차 아끼고 또 아껴먹었다.

지난 6월 21일 저녁 무렵, 할머니는 평소 친손자처럼 아끼던 이웃집 아이를 불렀다. 그 아이도 1년 전에 부모가 행방을 떠나 어디로 간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린 동생과 단 둘이 어렵게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수명아, 이거 가져가 먹어라”하시면서 아직 건더기가 남아 있는 닭고기 국을 건네주셨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좋아서 집에 돌아가 동생과 처음으로 배부르게 기름기 있는 닭고기 국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 감자를 같이 먹자고 할머니를 부르러갔던 아이는 싸늘한 방안 공기에 흠칫 놀랐다. 할머니는 낡았지만 가장 고운 옷을 차려입고 조용히 잠들어계셨다. 그렇게 할머니는 당신이 차마 아까워 드시지 못했던 닭고기 건더기 국을 어린 이웃에게 마지막 선물로 주고 고된 생을 마감했다.

갑자기 저수지 둑 열어 꽃제비들 수몰

지난 6월 17일, 량강도 대홍단군 삼봉구에서는 원봉 저수지 둑을 갑자기 여는 바람에 물이 범람해 고기잡이 나갔던 꽃제비 12명이 몰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근처에 사는 꽃제비 아이들은 그동안 물고기 번식철을 맞아 보통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이번에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변을 당한 꽃제비들은 대부분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올라온 아이들로 알려졌다. 한 꽃제비 무리의 우두머리격인 리종철(18세)군은 “물고기를 몇 마리 잡으면 된장이라도 풀어서 죽을 쒀 먹기도 하는데, 온 밤 새야하니까 조를 묶어서 교대로 나갔다. 그런데 어른들이 와서 애들을 막 때린다. 힘 센 놈들이 뺏아 가려고. 그래서 어른을 상대하려고 요전 날은 통째로 12명을 조직해서 내보냈는데 그 날 고기 잡던 애들이 몽땅 다 죽었다. 저수지를 언제 여는지 모르니까 어떻게 손 쓸 도리 없이 죽고 말았다”고 했다.

감자로 유명한 대홍단군, 전국 각지 꽃제비들 몰려

대홍단은 감자가 많다는 이유로 전국 각지에서 꽃제비들이 몰린다. 특히 량강도 대홍단군과 함경북도 연사군 경계 지역에 밀집해있다. 서두수 강이 있고 늪이 있어서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을 수 있고, 또 산을 끼고 있어 풀을 뜯어먹기가 쉽기 때문이다. 당국에서 쫓아내지만 꽃제비들이 꾸역꾸역 다시 모여드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이 곳 강가에는 꽃제비 초막들이 수두룩하다. 한 보안원은 올해 부쩍 꽃제비들이 늘었다고 했다. “서두수 강에 가보면 한 발짝 건너면 초막이 설 정도로 꽃제비 초막들이 새까맣다. 다 어디서들 오는지 한심할 지경이다. 꽃제비 애들이 감자 씨를 훔쳐 먹어 산다고 하지만, 여기 농장원들도 먹을 게 없어 출근 못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감자를 꼭 쥐고 죽어있었어요”

지난 5월, 김동석(17세)군은 꽃제비 친구들과 함께 감자굴에 갔다가 친구를 잃었다고 했다. “상학이가 들어가고 나는 망을 봤어요. 뚜껑을 닫아놓고 들어갔는데 한참 있어도 안 나오더라고요. 나 말고도 같이 간 애들이 많았는데 아무도 못 들어갔어요. 나도 죽을까봐 못 들어갔어요”라고 했다. “그 애를 보름이 지나서 꺼내게 되서 우리끼리 장례 지내줬어요. 상학이가 감자를 꼭 쥐고 죽어있었어요. 나는 나 살자고 상학이 꺼내줄 생각도 못했는데 상학이는 감자를 두 손에 쥐고 죽었다”며 울었다. 상학이는 장례를 치러줄 친구라도 있지만 이렇게 죽어간 다른 꽃제비 아이들은 시체를 꺼내보면 이름도 주소도 몰라 그냥 묻히고 만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아이들이라 그렇게 이름 없이 죽어간다.

대홍단 아이들, 진달래꽃 먹고 죽기도

대홍단군에서는 진달래꽃을 먹고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삼봉중학교에서는 1학년 아이들 중에 9명이 진달래꽃을 잘 못 먹고 중독에 걸려 무리죽음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서 먹지만, 아이들은 배가 고프니까 일단 입에 넣기 바쁘다. 감자 몇 알 먹고도 허기지니까 산으로 들로 나가 뭐든 뜯어먹는데 올 봄엔 진달래꽃을 몇 움큼씩 한꺼번에 너무 많이 뜯어먹다가 중독에 걸려 죽었다. 대홍단 서두구에 사는 장미옥(38세)씨는 “진달래꽃을 광주리로 뜯어와 먹는데 이걸 많이 먹으면 위에 경련이 일어난다. 빈속에 먹으면 독이 있어서 거품이 일어나면서 죽게 된다. 그러니까 어지간히 먹어야지. 나도 진달래 잘못 먹고 속 쓰려 죽는 줄 알았다. 약도 많이 먹으면 죽는 것처럼 그것도 많이 먹으면 죽는다. 어른들이 이 정도면 아이들은 더 말해 뭣 하겠냐”고 했다.

신덕구에 사는 리성자(37세)씨는 “나도 우리 큰 애한테 매일 주의를 준다. 우리 큰 애야 머리가 커서 그러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내가 안 보는 사이 우리 작은 애가 꽃을 함부로 먹을까 봐 걱정이 돼서 작은 애 데리고 다닐 때마다 ‘동생, 꽃 못 먹게 해라’ 몇 번이고 다짐받는다. 우리 큰 애는 학급 애들이 다 죽어나가고 있다고 ‘어머니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부모 없이 혼자 사는 애들이 그렇게 쉽게 죽는다”며 요즘 아이들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 고난의 행군 때가 생각나 소름끼친다고 고개를 저었다.

두꺼비 잡아먹다 죽어간 아이들

량강도 대홍단 삼봉구에서는 두꺼비를 잡아먹다가 죽어가는 아이들이 생기고 있다. 서두수 물가에 늪이 있어 고인 물에 개구리가 많았는데 너무 잡아먹어 요즘엔 개구리가 없고 대신 두꺼비가 나오는 철이라 두꺼비를 잡아먹고 있다. 예로부터 두꺼비 독을 잘만 쓰면 암 치료에 좋다는 얘기가 있으나, 독을 제거하지 않고 잘 못 먹으면 죽기도 한다. 영양실조에 걸려 면역력이 떨어진 아이들이 먹으면 치사율이 높아진다.

대홍단 삼봉구에 사는 한명선(43세)씨는 “개구리 알이 갓 낳은 건 독이 없는데 다리 나오고 꼬리 나올 때 독이 생긴다. 개구리로 클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못 먹기 때문에 올챙이일 때부터 조리로 떠서 잡아먹는데, 우리 인민반에 올챙이 잘 못 먹고 식중독에 걸려서 죽은 애가 지난달에만 한 댓명 된다. 그 시기가 지나니까 먹을 게 없어서 이제는 두꺼비가 나오고 있는데, 그것도 개구리처럼 살이 있는 고기라고 생각하고 애들이 잡아서 구워먹었다. 감자에 뿌리가 생기면 독이 있는데 거기다 두꺼비랑 같이 먹으니까 하룻저녁에 애들 대여섯 명이 죽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두꺼비 먹다 죽은 일은 그동안 잘 듣지 못했는데 하루 만에 여러 애들 송장 치우느라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최승철(42세)씨도 “두꺼비 살이라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쭉정이 강냉이 가루랑 섞어 두꺼비 죽을 쒀 먹어보려던 애들이 불에 구워 먹었다가 죽었다”고 했다. 삼봉중학교 어떤 반은 36명의 학생들 중에 영양실조로 죽거나 먹을 것을 잘 못 먹어 죽은 아이들이 지난 두 달 새에만 열 명이 넘었다.

감자 훔치러 굴에 들어갔다 질식사하는 꽃제비들

예부터 량강도 대홍단은 감자를 깔아놓고 먹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은 고산지대라 옥수수 농사가 안 되는 반면 감자를 주 농사로 짓는다. 제일 먼저 캐먹는 감자는 8월 20일 경에 나고, 6, 7월인 지금은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이다. 통감자를 겨울 내내 ‘감자굴’(감자 종자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보통 4월 초순 감자농사철이 되면 칼로 눈을 떠 심는다. 감자 씨를 뜬 나머지는 일하러 나오는 농장원들에게 준다. 감자 눈을 한 광주리 뜨고 나면 농장원들에게 돌아가는 감자는 반 광주리도 안 남는다.

감자가 얼지 않도록 만들어진 감자굴에 내려가게 되면 마치 지하 동굴처럼 깊고, 보통 가로, 세로 40미터씩 널찍하다. 감자가 꽉 차 있어 잠시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감자들이 내뿜는 독이 지독하다. 3미터 당 뚜껑이 한 개씩 있는데 자주 환기시켜주고 썩지 않도록 감자를 뒤집어줘야 한다. 하루 종일 환기시키고 나면 그 다음 날에야 사람들이 들어가서 썩은 감자를 꺼내곤 한다.

올해는 감자 굴에 생감자를 훔치러 들어갔다가 질식사하는 아이들이 많다. 보초 서는 사람들이 있어도 경비 막에서 보초를 서기 때문에 잠깐 틈을 타 뚜껑을 열고 들어갔다가 열어놓으면 들키니까 닫아놓고 있게 된다. 이렇게 뚜껑을 닫은 상태에서 밀폐된 공간에 들어서게 되면, 평소에도 감자들이 뿜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질식할 지경인데 곧 산소 호흡이 안 되서 죽게 된다.

권순영(35세)씨는 “올해 5월과 6월, 이렇게 들어가자마자 질식해서 죽은 애들이 많다. 산소 호흡기를 들고 가야하는데 애들이 그거 없으니까. 성공한 애들이 열중의 하나도 안 될 거다. 올해는 유독 먹을 게 없어서 애들이 죽어도 기를 쓰고 들어 간다”고 했다.

량강도 군인들, 가죽 허리띠 삶아먹어

지난 6월 초, 량강도 주둔 군대의 한 부대장이 검열에 걸렸다. 군복을 시장에 내다판 혐의였다. 군대에 쌀이 없고 돈이 없어 일반 사병들이 허리띠를 삶아먹은 게 원인이었다. 지난 5월 28일 사병들이 죽물이라도 우려먹겠다고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허리띠를 끓여먹는 것을 목격하고 “니네 왜 그러냐”고 물었다. “너무 배고파서 그럽니다”라는 대답에 너무 기가 막혔던 부대장은 겨울 군복을 꺼내 장마당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쌀을 사서 한 두 번 정도 사병들을 먹여 살렸는데 그만 검열에 걸리고 말았다. “지금 애들이 죽어가서 할 수 없이 군복이라도 팔아서 애들을 먹인 거다”라고 했지만 정상참작이 되지 못했다.

김철승(38세)씨는 자기 부대에도 이번 3월에 준 새 군복의 허리띠가 몽땅 없어졌다고 한다. “(삶은 허리띠를) 나도 먹어봤다. 그거 퍼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소가죽을 끓이게 되면 그게 구수하다. 가죽을 그냥 먹자면 못 먹지만 삶으면 우린 물이 나오는데 그거 먹는다. 북도 돼지가죽, 소가죽인데 그것도 형체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런 게 현실이 됐다. 그때는 사람이 굶어죽어도 소가죽 먹는다는 생각은 못했다. 지금은 소가죽이든 돼지가죽이든 가죽으로 만든 것들은 남아나지를 않는다. 어떤 애들은 너무 급해서 북에 붙은 가죽을 삶아먹는 게 아니라 씹어 먹는 지경이다. 지금은 1990년대 중반보다 더 어렵다”고 몇 번이고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가죽 혁띠 삶아먹는 인민군대들이 얼마나 원한이 많겠느냐”며 “인민군대도 할 수 없이 끌려간 인민의 자식들이다. 군대 가면 허약 상태에 걸려서 굶어죽는다는 거 알지만 갈 수밖에 없다. 제발 어디서든 먹을 것 좀 구해 달라”고 간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