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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172호

■ 시선집중

원산시, 길거리에 쓰러진 꽃제비들에 무관심

햇보리가 나오고 감자가 나와 다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시기가 됐지만 꽃제비 수는 이상하게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봄보다 더 많은 꽃제비들이 시장이나 역 등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다보니 보안원들도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7월에 들어와 아침 일찍 길거리에 나서면 길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여러 명의 꽃제비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볼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일이 일상이 되어서인지 모두들 개의치 않고 그냥 지나간다. 쓰러져 있는 아이가 죽었는지 숨이라도 붙어있는 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떤 날에는 누군가 신발이나 옷을 벗겨가 벌거숭이가 되다시피 해서 쓰러져 있는 모습들도 볼 수 있다. 원산 역에서 물장사를 하는 김길례(57세)씨는 “우리도 아마 저렇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데 저런 사람들한테 관심 가질 게 뭔가. 너무 한심한 세월에 살다보니 사람이 점점 무섭게 변해간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식량난 여파로 생계형 범죄자 증가에 꽃제비도 증가 악순환

식량난이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먹고 살려는 생계형 범죄자가 늘면서 꽃제비들이 따라 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부모가 구류장에 갇히거나 단련대나 교화소에 가게 되면 마땅한 생계벌이를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 꽃제비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단란하고 오붓하게 살던 가족들이 이런 식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현상이 전국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 경제활동

간부 자녀들 과외 열풍에 보안원 단속도 주춤

개인 교습이 평등 교육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과외를 단속하고 있지만 근절되기는커녕 더 전문화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전에는 은퇴한 선생님들이 주로 끼니벌이를 위해 몇몇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점점 현직 교사들이 과외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교사직을 사퇴하고 아예 전문 과외 선생으로 나선 경우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양상이다. 평소 학생을 잘 가르치는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아온 선생님들이 사직서를 내고 한 학생당 보통 1만원에서 1만 5천 원씩의 과외비를 받고 가르쳐주는 사례가 많다.

평양 만경대구역에 사는 홍성철(37세)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한다. “학교에 출근할 때에는 보잘 것 없던 교원생활이 지금은 보통 한 달에 학생 10명을 맡아 배워주는(가르쳐주는) 데 15만원을 번다. 내 밑천 들일 거 하나 없이 똑같은 일 해도 이렇게 버니 생활이 달라졌다. 교원질 할 땐 옥수수밥을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하루 세 끼 입쌀밥 먹는 수준이 됐다”며 좋아했다. 홍선생님과 같은 사례가 많아지자 지난 6월 23일부터 평양을 비롯한 각 지역 보안서들에는 “교육자들의 이런 행위를 절대로 용서 못하므로 법적 처벌을 엄중히 적용할 데 대한” 지시가 내려졌다. 그런데 과외를 하는 학생들 중에는 높은 직위의 간부 자녀들이 많아 보안원들이 꼼짝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평양에서는 특히 간부들이 자녀들에게 영어와 컴퓨터 교육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데, 능력 있는 교사들의 수가 많지 않아 이 쪽 선생님들이 과외 선생님으로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이렇듯 간부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과외 선생님을 잘 못 건들었다가는 도리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보안원들은 단속을 강하게 하기보다 유야무야 봐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황해남도 농촌마을, 소학교와 유치원 무단결석률 높아

황해남도 장연군과 옹진군의 농촌 학교에서는 식량사정으로 무단결근하는 학생들이 대단히 많다. 특히 중학교보다 소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 교육을 제대로 진행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선생님들은 수업하러 나오지 않는 학생들을 찾아다녀야 하지만, 선생님조차 먹지 못해 기운이 없는데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옛날처럼 열성적으로 데리러 다니지 못하고 있다.

원산시, 길거리에 쓰러진 꽃제비들에 무관심

햇보리가 나오고 감자가 나와 다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시기가 됐지만 꽃제비 수는 이상하게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봄보다 더 많은 꽃제비들이 시장이나 역 등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다보니 보안원들도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7월에 들어와 아침 일찍 길거리에 나서면 길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여러 명의 꽃제비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볼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일이 일상이 되어서인지 모두들 개의치 않고 그냥 지나간다. 쓰러져 있는 아이가 죽었는지 숨이라도 붙어있는 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떤 날에는 누군가 신발이나 옷을 벗겨가 벌거숭이가 되다시피 해서 쓰러져 있는 모습들도 볼 수 있다. 원산 역에서 물장사를 하는 김길례(57세)씨는 “우리도 아마 저렇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데 저런 사람들한테 관심 가질 게 뭔가. 너무 한심한 세월에 살다보니 사람이 점점 무섭게 변해간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식량난 여파로 생계형 범죄자 증가에 꽃제비도 증가 악순환

식량난이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먹고 살려는 생계형 범죄자가 늘면서 꽃제비들이 따라 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부모가 구류장에 갇히거나 단련대나 교화소에 가게 되면 마땅한 생계벌이를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 꽃제비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단란하고 오붓하게 살던 가족들이 이런 식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현상이 전국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화기 훔쳐 판 아버지와 꽃제비가 된 아들

강원도 원산에 사는 김영란(38세)씨에 따르면, 요즘 사람들은 식량난 때문에 도적질, 싸움질, 직장 무단 결근자, 밀주 등에 나서다 단속에 걸려 생계형 범죄자가 되는 길이 허다하다. 김씨의 이웃집도 아주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는데 식량난 여파로 생계형 범죄에 걸려 온 집안이 망한 사례가 있다. 김씨의 이웃은 직장에서 전화기를 훔쳐서 시장에 팔다가 붙잡혀 노동 단련대 3개월 처분을 받았다. 그는 성실한 사람으로 평이 좋았다. 다만 간이 좋지 않아 전부터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더 이상 친척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고, 풀죽으로만 버티기 어려워지자 직장의 전화기를 훔쳐 판 게 화근이었다. 세대주가 덜컥 단련대에 가버리게 되자, 김씨의 표현에 따르면 “그 집에서는 믿고 의지할만한 기둥을 잃어버려서 오히려 엄동설한에 서리까지 내린 격이 되어서 생활난이 더 가심해 졌다”고 한다.

그의 아내가 무던한 사람이라 14살 아들과 11살 딸아이를 먹여 살리려고 매일 사회동원에 나가는 틈틈이 산나물을 뜯고, 물고기를 염장해주고 받은 돈으로 끼니를 마련하는 등 밤낮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런데 3개월 후 단련대에서 돌아온 세대주가 간복수로 얼마 못 버티고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학교에 보내던 부지런한 그의 아내도 지쳤는지 얼마 못가 쓰러지고 말았다. 더 이상 이 집에서 벌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되자, 큰 아이가 여동생을 데리고 친척집에 찾아갔다. 오빠는 여동생만 그 집에 남겨두고 자신은 원산시 장마당에서 빌어먹거나 장사꾼의 심부름을 해주는 등 꽃제비 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꽃제비가 된 아이는 시시때때로 옛날 살던 집으로 돌아가 앓아누워있는 어머니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죽어도 살아도 한 집에서 살자며 가지 말라고 했지만, 아이는 같이 있다가는 다 죽게 된다며 다시 꽃제비 생활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마저 나날이 병색이 짙어지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이는 여느 꽃제비 아이들이 그렇듯 그동안 장마당에서 쫓겨 다니고 단속돼 구제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뛰쳐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은 데 이어 어머니마저 잃고 외로웠던 아이는 한 번은 물건을 훔치다가 머리를 크게 잘 못 맞아서 뇌에 손상을 입었다. 평소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병이 도지면 남들이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말을 중얼거렸다. 꽤 약삭빠르고 돈 10원을 벌어도 꼭 엄마 집에 가져다주곤 하는 효심 있는 아이로 기억하던 주위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하게 변한 아이가 신발도 못 신고 해진 옷에 온몸에 땟물이 줄줄 흐른 채로 칠칠치 못하게 다니는 꼴을 보고 깊은 동정심을 표했다.

지난 7월 초, 이 아이는 원산시 시장에서 “우리 엄마 굶는다, 우리 엄마 먹을 게 없다”라고 소리치면서 두 명의 군인의 손에 있던 밀가루 빵을 채갔다. 혈기왕성한 젊은 군인들이 그 자리에서 붙잡아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 따위 짓을 하는 거냐”며 아이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삽시간에 피투성이가 된 아이는 쓰러져 의식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손발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손에는 빵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던 사람들은 “저희들보다 어린 동생뻘 아이에게 먹으라고 주기는커녕 어쩌면 저렇게 반죽음을 만들 수 있는가, 정신 장애가 있는 아이를 먹을 것 때문에 죽이려고까지 하다니 인민군대냐 왜놈 헌병대냐?”며 여기저기서 분개심을 표했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호된 비난에 놀란 두 군인은 냉큼 두 말 없이 뺑소니치듯 사라졌다. 이들의 비인간적인 폭행에 의식을 잃은 아이는 계속 코피를 흘리고 온몸에서는 경련이 멈추지 않아 시장 보안원이 구제소에 실어갔는데 그 뒤로 어찌됐는지 생사가 불분명하다. 주민들은 이 아이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정신지체에 치명적인 신체장애를 입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김영란씨는 “한창 부모 품에 안겨 어리광도 부리고 근심 걱정 없이 즐겁게 뛰놀며 배워야 할 아이가 극심한 식량난에 부모 잃고, 동생마저 다른 집에 맡겨두고 정신상, 신체상 구박당하고 비참해지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가 전화기를 훔친 게 결국 아이를 꽃제비로 만들고, 모두가 다 불행해지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며, 그 아버지를 욕해야 하는 거냐, 그 세대주가 훔칠 수밖에 없도록 한 이 세상을 욕해야 하는 거냐고 물으며 한숨을 지었다.

해주시, “꽃제비들 넘쳐나니 잡아오지도 말라”

황해남도 해주시에서는 꽃제비들을 단속하고 있으나 그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이제는 “꽃제비들을 잡아오지도 말라”는 지시가 나올 정도로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구제소의 경우 수용 인원을 초과해 더 이상 꽃제비들을 받기 힘들 정도다. 회의 때마다 “꽃제비들을 없애라”는 말이 나오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마땅치 않다. 구제소를 더 확대해서 수용 가능 인원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구제소도 사정이 열악한데 더 확대한다고 해서 얼마나 현실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게다가 꽃제비 구제소에는 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전염병이 돌고 있어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약품이 없어 치료 한 번 해주지 못하면서, 꽃제비들을 이렇게 잡아가두기만 하면 능사인가. 괜히 가둬놓았다가 멀쩡한 다른 아이들까지 병이 옮겨 결국 다 죽이고 마는 것은 아닌 가”라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전염병 대책은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