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오늘의 북한소식 224호

■ 시선집중

“나라 지켜내라지만 열의 없어 중국에 살고 싶다”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는 “정치 강연 때마다 우리더러 나라를 지켜 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켜낼 열성도 없고 그럴 마음도 안 난다. 예전에는 국경이 너무 멀어서, 그리고 집사람과 아이들 때문에 도강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모험이라도 해서 중국에 넘어가 살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언제라도 기회만 되면 도강을 감행하겠다는 사람은 늘고 있으나 실제로 넘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도강비를 내지 않고 국경을 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죽 한 끼도 변변하게 못 먹는 사람들이 중국에 가기에는 도강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중국에 왔다 갔다 하려면 도강비가 약 2천 위안 정도 들지만, 아예 넘어가는 사람은 3천 위안이 넘게 든다.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도강을 꿈꾸지만 정작 도강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소수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현재 북한의 현실이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중하냐?”

지난 8월 3일, 함경북도 청진시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서 라진으로 장거리 장사를 떠났던 한 대형 자동차가 저슬령 고개에서 굴러 떨어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사고 소식에 김책제철소 지배인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차 사고가 난 현장이었다. 이를 두고 노동자들 사이에 말들이 많았다.

황규혁(43세)씨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냐. 사고 당해 누워있는 운전수를 보러 병원부터 찾아가는 게 도리 아니냐. 차가 멀쩡한 지 살피러 사고 현장부터 먼저 찾는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세상이 살기 어려워졌다고 이런 법이 있냐?”면서 개탄해마지 않았다. 사고차량은 국영 기업소에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수입 차량이었다.

이에 대해 한 간부는 “나라도 자동차부터 살펴보러 갔을 거다. 미리 가서 수습하지 않으면 사방에서 달려들어 차 부품이고 뭐고 다 뜯어가 버린다. 너무 늦으면 남아나는 게 없다.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면 부품 한 두 개라도 일단 건져내는 게 지배인으로서의 의무다. 지배인보다 더 아랫사람이 가봤자 필요가 없다. 지배인 정도가 가야 그나마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차량을 수습해올 수 있다. 이미 환자는 병원에 가 있으니까 병원에는 부지배인이나 직장장이 가도 일없는 게 아닌가?”라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 경제활동

“시내 음료수 사용 질서를 세우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는 “시내 음료수 사용 질서를 세우자”라는 내용으로 대중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개별 세대들이 상수도 원관에서 직접 수도관을 뽑아서 물 랑비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했다. 아파트의 여러 세대들은 공동 수도를 사용하는데, 개별 세대들이 그 수도관을 자기 집의 수도관과 연결해 물을 뽑아가기 때문에 한두 집에서 끌어 쓰면 종종 물이 금방 바닥나고 만다.

주민들은 수돗물이 잘 나오도록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하니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심경철(38세)씨는 “물 애로 사항에 대해 시간부들이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나라 지켜내라지만 열의 없어 중국에 살고 싶다”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는 “정치 강연 때마다 우리더러 나라를 지켜 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켜낼 열성도 없고 그럴 마음도 안 난다. 예전에는 국경이 너무 멀어서, 그리고 집사람과 아이들 때문에 도강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모험이라도 해서 중국에 넘어가 살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언제라도 기회만 되면 도강을 감행하겠다는 사람은 늘고 있으나 실제로 넘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도강비를 내지 않고 국경을 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죽 한 끼도 변변하게 못 먹는 사람들이 중국에 가기에는 도강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중국에 왔다 갔다 하려면 도강비가 약 2천 위안 정도 들지만, 아예 넘어가는 사람은 3천 위안이 넘게 든다.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도강을 꿈꾸지만 정작 도강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소수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현재 북한의 현실이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중하냐?”

지난 8월 3일, 함경북도 청진시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서 라진으로 장거리 장사를 떠났던 한 대형 자동차가 저슬령 고개에서 굴러 떨어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사고 소식에 김책제철소 지배인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차 사고가 난 현장이었다. 이를 두고 노동자들 사이에 말들이 많았다.

황규혁(43세)씨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냐. 사고 당해 누워있는 운전수를 보러 병원부터 찾아가는 게 도리 아니냐. 차가 멀쩡한 지 살피러 사고 현장부터 먼저 찾는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세상이 살기 어려워졌다고 이런 법이 있냐?”면서 개탄해마지 않았다. 사고차량은 국영 기업소에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수입 차량이었다.

이에 대해 한 간부는 “나라도 자동차부터 살펴보러 갔을 거다. 미리 가서 수습하지 않으면 사방에서 달려들어 차 부품이고 뭐고 다 뜯어가 버린다. 너무 늦으면 남아나는 게 없다.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면 부품 한 두 개라도 일단 건져내는 게 지배인으로서의 의무다. 지배인보다 더 아랫사람이 가봤자 필요가 없다. 지배인 정도가 가야 그나마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차량을 수습해올 수 있다. 이미 환자는 병원에 가 있으니까 병원에는 부지배인이나 직장장이 가도 일없는 게 아닌가?”라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함흥 방직공장, 군용담요 만들 파솜 수집에 총력

함경남도 함흥시 모방직 공장은 2경제 산하 군수를 보장하는 기업소다. 이 공장에서는 인민무력부에 공급할 군용 담요를 기본적으로 생산한다. 그런데 담요를 생산할 원료가 부족해 파솜 수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장에서는 여성 종업원들을 50명 내지 80명씩 조를 묶어 각 지역에 내보내 주민들이 덮고 있는 이불솜이나 파솜을 수집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도에까지 가서 집집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파솜을 kg당 500원씩 주고 사들이고 있다. 이동경비가 많이 들다보니 장사할 물건을 팔고 다니며, 그 때 그 때 경비를 마련한다.

이 공장 종업원 수는 약 5,000명 정도 되는데, 3,500명의 여성들이 타 시, 군에 이동작업을 나가고 있다. 이동작업을 나가는 여성들은 다들 생활 형편이 어려운 편이다.

“남조선은 체육도 10대 강국”말 잘 못했다 곤혹 치른 조선족

중국 훈춘시에 사는 한 50대 남성이 함경북도 온성군 온성읍에 사는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말을 잘 못 해서 큰 곤혹을 치렀다. 그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과 담배를 권하면서 한담을 나누던 중에 8월에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 얘기를 꺼냈다.

그는 “남조선은 체육이 세계 10강 안에 든다. 수출도 세계적으로 12번째로 많이 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잘 사는 나라는 체육도 잘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누군가 보안서에 알리는 바람에 불시 검문을 당했다. 시장 담당 보안원은 그의 신원파악을 먼저 한 뒤 친척 방문하러 왔다는 그의 말에 “진짜 친척 방문하러 왔는가, 남조선을 선전하러 왔는가. 방금 시장 문 앞에서 무슨 말들을 했느냐”며 따졌다. 그때만 해도 분위기 파악을 잘 못했던 그는 “남조선에 대해 내가 한 말은 추호의 과장도 거짓도 없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구만. 주머니에 있는 것들부터 다 내놔봐라”며 소지품을 검사했다.

보안원은 종이쪽지에 청진시 지역 번호가 찍힌 전화번호가 나오자 누구 전화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친구가 조선에 나가면 친척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해서 받아온 전화라고 해명했지만, “똑똑히 말하라. 남조선 사람이냐, 탈북자냐? 그 사람들 중에 누구 심부름이나 부탁을 받고 나온 것이 아니냐. 보아하니 남조선 물을 많이 먹은 것 같은데 보통 손님이 아니다”면서 몰아세웠다.

점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그는 “여기 법을 잘 몰라서 실언을 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며 가지고 갔던 돈 3천위안과 담배 2보루를 내주었다. 보안원은 그제야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목적이 불분명한 돈이므로 이 돈은 몰수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니 내일 당장 돌아가라”고 못 박듯이 말했다. 그는 괜히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금전 손해만 봤다며 억울해했지만, 이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은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알라”며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