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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388호

■ 시선집중

봉산협동농장, 작년 무단결근자 평균 40%

황해북도 봉산군 봉산협동농장의 한 일군은 작년 한 해 출근자가 평균 60%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시기에 따라 출근비율이 들쑥날쑥한데, 대체로 춘궁기에서 8월 말까지 결근율이 가장 높았다가 가을걷이 시기가 되면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작년 7월에는 농장원의 절반 이상이 결근하기도 했는데, 다들 개인 소토지 농사를 지으러 나가거나 사리원 시내에 나가 농산물을 팔러 다녔다. 무단 결근자가 속출한다는 보고를 받은 시당에서는 담당 보안서에 결근자를 무력으로라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별다른 사유 없이 장기 결근한 사람들을 구속해 교양을 하거나, 3개월 이상 결근자들은 무조건 단련대에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출근율을 높이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 농장원들 중에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 생긴 것은 2000년 7.1경제조치 이후부터다. 그 전에는 농민시장이 열릴 때 잠깐씩 다녔던 수준이라면, 경제조치 이후에는 장사를 목적으로 결근하는 사람이 생겼다. 봉산협동농장에서 17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강선정(가명)씨는 그때부터 출근율이 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도 평균 60%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농장 일을 해서 무슨 필요가 있는 가, 장사를 하면서 사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시사철 안 쉬고 피땀 흘려 일해도 식량 분배량과 현금 분배 몫이 갈수록 적어지니 사람들이 다른 돈벌이를 찾아 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봉산협동농장 농민들, “농사 안 짓고, 머슴 조개잡이 할 것”

언제부턴가 북한에서는 ‘머슴’이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봉건의 잔재를 끝장냈다고 선전하는 중앙당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머슴’과 ‘지주’는 이제 주민들의 생활언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봉이 김선달로 유명한 황해북도 봉산군 봉산협동농장에서도 머슴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농민들에게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머슴 조개잡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조개잡이를 해주고 일당으로 얼마간 받는 일을 ‘머슴 조개잡이’라고 한다. 박해성(가명)씨는 봉산협동농장에 성실하게 출근한 농민들보다 머슴 조개잡이라도 나간 농민들의 형편이 더 낫다고 했다. 초봄부터 열심히 농사를 지었던 농민들은 작년 수해 피해로 농사를 망치는 바람에 결산분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농장에서 거둔 알곡이 없어 결산총화를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 박씨는 결산총화를 한다고 해도, 전년도에 비해 분배량을 1/5도 못 받을 거라고 했다. 차라리 바닷가에 나가 머슴 조개잡이라도 나간 사람들의 집에는 먹을 게 있다는 소리가 괜한 소리가 아니다. 요령이 좀 더 좋은 사람들은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기도 했는데, 최소 3개월 이상의 식량을 마련해놓아 ‘머슴 조개잡이’보다 형편이 더 좋은 편이다. 작년에 순진하게 농사만 지었던 농민들은 이런 저런 실례들을 듣고, 올해는 일찌감치 농사 기대를 접고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거나, 바닷가에 나가 머슴 조개잡이라도 해야겠다고 말한다.

‘머슴살이’여성들만 당하는 남모를 고통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하층민들은 ‘머슴살이’로 살아간다. 주로 장사꾼들이나 돈주들, 당간부들, 법기관 일군 등 잘 사는 집에서 삯벌이를 하는 일이다. 남의 집 구들이나 부엌 수리, 신발 수선, 옷 바느질, 식모살이 등 몸으로 하는 일들이다. 아주머니나 나이든 할머니들은 친척인 것처럼 위장해 잘 사는 집들에 들어가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는 등 살림을 하고, 장사하러 떠난 부모 대신 어린 자녀들을 돌본다. 30세 리명선(가명)씨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가 된 뒤 오갈 데가 없어 큰 장사꾼 집에 들어가 식모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머슴살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가 나오자 실제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머슴살이가 얼마나 고달픈지 곧 자기 신세한탄을 했다.

“차 칸에서 우연히 이 집 아저씨를 알게 됐어요. 남편 죽고 나니 제가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장사도 못하고 벌어먹을 데도 없고, 주변에 손 벌릴 사람도 없다고 얘기하니, 그럼 자기 집에서 일하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밥 짓고 빨래 해주고 집도 거둬 주면서 쌀 조금, 돈 조금 받아서 살았어요. 본가집(친정집)에 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셔서 받은 쌀이랑 돈을 가져다 드리고,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아무리 막말하고 함부로 대해도 그 재미에 힘든 것도 참고 일했어요. 그런데 이집은 아저씨가 멀리 장사 갔다 오면, 그 다음에는 아주머니가 나가는 식으로 번갈아 집을 비워요. 소학교 4학년 다니는 남자애를 내 자식처럼 거둬주었는데, 진짜 머슴처럼 사람을 천시하고 구박이 심했어요. 하루는 아주머니가 함흥으로 장사를 떠났어요. 밤중에 제가 세면장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저더러 방으로 잠깐 들어오라는 거예요. 낮에 방을 치웠는데 뭘 잘 못 찾겠다고 찾아달라는 거였어요. 방에 들어가니 아저씨가 저를 크게 생각해주는 것처럼 ‘젊은 나이에 너무 고생이 많다. 왜 다시 시집을 안 가느냐’고 손을 잡더니, 이불 속으로 저를 끌어당기는 것이었어요.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는 여자라 업신여기는 가 싶어 당장 뿌리치고 뛰쳐나왔어요. 다음날 아침에 밥을 해주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계속 자기 말을 잘 들으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나를 노리개처럼 여기는 것이었어요. 얼마 후에 아주머니가 돌아왔는데 아주머니도 자기 남편 눈치가 이상해서인지 나를 멀리 대하는 것이었어요. 이러다 이집에서 쫓겨나는 게 아닌 가 전전긍긍하게 되고, 아주머니가 아무리 욕하고 화를 퍼부어도 참을 수밖에 없어요. 죄지은 것도 없고, 내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것 같아요. 누구한테 속 시원하게 말도 못하고 혼자 얼마나 끙끙댔는지 몰라요. 남의 집에서 오갈 데 없이 밥 빌어먹고 살자니 이런 종년 취급당하는 게 억울하기만 해요.”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는 여성들 중에는 리씨처럼 봉변을 당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여성들은 처음에는 당황해하지만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져, 집주인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는 경우들도 있다. 도덕성이 밥 먹여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 달라진 세태이기도 하다. 전 같으면 손가락질하고 당국에 신소했겠지만, 지금은 다들 모른 체 하는 분위기다.

사리원 큰 장사꾼, “길에다 100만원 뿌려야 청진 다녀올 수 있다”

황해북도 사리원 큰 장사꾼들은 요즘엔 장거리 장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길 떠나는 것 자체가 돈이 많이 드는데, 외화 값이 폭등하면서 디젤유나 휘발유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져서다. 물동량들이 대부분 10톤 내외 차량으로 움직이는데, 신의주에 가려면 40-50만 원 지출이 기본이다. 휘발유 차량은 2배 정도로 뛴다. 여기에 운전사와 장사꾼들이 먹고 자는 경비까지 더하면 이동에만 100만 원 이상 뿌려야 한다. 함경북도 청진이나 나선에 다녀오려면 경비는 더 불어난다. 그러니 웬만한 장사꾼들은 장거리 장사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금 장사를 하거나 큰 물동을 움직이는 상인들은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시장에 나가 팔거나 농촌에서 물건을 가져다 나르는 일종의 ‘달리기’ 장사를 하고 있다. 사리원에서 청진에 고구마를 내다팔고 있다는 박명학(가명)씨는 “모든 써비 돈을 뽑고도 많은 리윤을 보자면 청진 같은 데로 뛰어야 한다. 사리원시에는 곡산군과 신계군에서 생산되는 고구마가 많이 들어오는데, 자강도나 함경북도 쪽에 내다팔면 이윤이 많이 남는다. 작년 수해피해가 컸지만, 쌀, 옥수수 등 곡물 농사는 물론이고 고구마 농사가 기본적으로 잘 되는 곳이라 사리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원천이 풍부한 편이다. 작년에 수해피해로 소출이 많이 줄어 눈에 차지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부지런히 뛰고 있다”고 했다.

청진 꽃제비, 온기 찾아 제철소 재무지로

살을 에는 혹한 속에 거리를 떠도는 방랑자들은 더더욱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어린 꽃제비들을 포함해 방랑하는 어른들까지 김책제철소 재무지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제철소에서 버려지는 석탄재에 남아있는 온기를 취하기 위해서다. 꽃제비들은 어디서 용케 주워 온 비닐박막을 잿더미 위에 깔고 잠을 청하는데, 간혹 불씨가 옷에 달라붙어 화재가 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제철소에서 금방 버린 석탄재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서로 챙겨 가려고 애쓴다. 방금 나온 것일수록 뜨겁고 온기가 오래 가는 게 많기 때문이다. 요새 꽃제비들은 혼자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고, 여러 명이 뭉쳐 다니는데, 갓 버려진 석탄재를 두고 패싸움을 할 때도 많다. 자기들 안에서도 너무 어리거나 몸이 약한 아이들은 각자 보살펴주거나 패싸움이 일어났을 때도 보호해준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구제소에 끌려가 생활하면 먹을 것도 없지만 규율이 심하기 때문에, 차라리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는 게 더 좋다고 한다. 어른 꽃제비들은 무리에 섞여 지내기보다는, 따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아 꽃제비 무리는 주로 10-20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낮에는 수남 시장이나 역 주위를 돌며 먹을 것을 구하고, 밤에는 김책제철소 재무지에서 생활한다.

수남시장 꽃제비들은 다 떨어진 넝마 옷을 주워 입고 다니는데, 얼굴이 하도 까매서 눈만 하얗게 빛난다. 머리는 산발에 너덜너덜해진 포대 자루 하나 뒤집어쓴 모양으로 돌아다니는 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하지 못할 행색이다. 음식 매대 옆을 수시로 지나다니며 땅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기도 하고, 손님이 음식을 건네받으려는 순간 쏜살같이 채가기도 한다. 예전에는 끝까지 아이를 쫓아가 때리기도 하고 음식을 다시 돌려받기도 했지만, 이젠 그냥 놔둔다. 시꺼먼 손으로 덮친 음식을 도저히 자기 입에 넣고 싶지 않아서 더러워서라도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올 겨울 들어 유난히 꽃제비들이 눈에 많이 띄자, 주민들의 불만도 높아가고 있다. 수남시장을 관리하는 한 보안원에 따르면,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지만 2009년과 비교해보면 작년에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해 해가 바뀐 지금은 더 늘어났다고 한다. 꽃제비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고난의 행군 시기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하는 보안원도 있다. 송평구역당 간부 한 명은 시당과 구역당에서 꽃제비 문제로 여러 차례 회의를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구제소에 넣어봤자 난방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올 겨울처럼 추운 날씨에는 차라리 재무지에서 석탄재 온기라도 쬐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당에서도 별 대책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평양, 혹한에 노인 사망자 급증

평양시 시당 간부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노인 사망자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병원에 신고 된 사망자 숫자 중에 노인 사망률이 유독 높아 원인을 살펴보니 대부분 기존 지병에 추위와 배고픔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은 만성 영양실조와 결핵, 심장병 등 개인의 특정 병력을 참고해 사인을 기재하지만, 주로 “못 먹은 데다 날이 너무 추워져서 얼어 죽었다”고 했다. 평양시내 모 구역 인민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12월 말부터 영하 20도까지 뚝 떨어지면서, 자기 병원에서 유독 노인 사망자 숫자가 늘었다고 했다. 시당의 한 간부는 자신이 검토한 사망자 통계 자료를 근거로, “1월 1일부터 (평양시) 전체적으로 볼 때, 매일 40-50명꼴로 죽었다. 1월 10일부터 하루에만 죽은 노인이 150명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특히 14일은 207명, 15일은 196명, 16일은 231명이 사망했다. 그 뒤로 20일까지 조사한 바로는 매일 평균 150명 넘게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는 평양시 전력 사정으로 난방이 되지 않아 집에서 얼어 죽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추운 집을 떠나 낮에는 평양 지하철역에 많이 들어가는데 저녁 5시가 되면 쫓겨난다. 하는 수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뜨거운 물을 끓일 전기나 밥 해먹을 연료도 없는 가난한 노인들은 꼼짝없이 집안에서 덜덜 떨고 있어야 한다. 또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또 물이 없을 때가 많다. 평소에도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아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데, 물이 꽁꽁 얼어붙어 하루 식수조차 마련하기 어렵다. 깨진 유리창 틈새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은 방안 전체를 냉동고로 만들어 버린다. 몇날며칠 씻지도 못한 상태에서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이불을 둘둘 말고 잠을 청해도 이만 덜덜 떨릴 뿐 잠이 오지 않는다. 아파트 고층에 사는 노인들은 운행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계단 내려오기가 힘들어서 바깥출입 자체가 어렵다.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변을 당하기 일쑤다. 시당에서는 노인 사망자가 급증하는 것을 파악하기는 했으나,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중심구역 주민들과 보위부, 보안원, 당 간부에게 배급할 식량을 확보하는 것만도 벅찬 상태라 취약계층에 손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선교구역에 사는 김정혜(가명)씨는 올 겨울 추위가 노인들에게 너무 혹독하다며 당의 배려를 촉구했다. 김씨는 “우리 구역에서도 노인들이 벌써 15명이 넘게 죽었다. 집에 가보면 온기라곤 하나도 없고, 불씨 하나 제대로 태우지 못하고 죽은 것 같다. 그런데 제일백화점에 가보면 물건이 그득그득해 없는 게 없고, 간부들은 다 배 불리 잘 사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한테 더 줄 게 뭐 있나. 당에서 안 줘도 잘 먹고 잘 살 사람들인데.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한테 하나라도 더 챙겨줘야 어머니 당이 최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 사회

평양, 혹한에 노인 사망자 급증

평양시 시당 간부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노인 사망자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병원에 신고 된 사망자 숫자 중에 노인 사망률이 유독 높아 원인을 살펴보니 대부분 기존 지병에 추위와 배고픔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은 만성 영양실조와 결핵, 심장병 등 개인의 특정 병력을 참고해 사인을 기재하지만, 주로 “못 먹은 데다 날이 너무 추워져서 얼어 죽었다”고 했다. 평양시내 모 구역 인민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12월 말부터 영하 20도까지 뚝 떨어지면서, 자기 병원에서 유독 노인 사망자 숫자가 늘었다고 했다. 시당의 한 간부는 자신이 검토한 사망자 통계 자료를 근거로, “1월 1일부터 (평양시) 전체적으로 볼 때, 매일 40-50명꼴로 죽었다. 1월 10일부터 하루에만 죽은 노인이 150명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특히 14일은 207명, 15일은 196명, 16일은 231명이 사망했다. 그 뒤로 20일까지 조사한 바로는 매일 평균 150명 넘게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는 평양시 전력 사정으로 난방이 되지 않아 집에서 얼어 죽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추운 집을 떠나 낮에는 평양 지하철역에 많이 들어가는데 저녁 5시가 되면 쫓겨난다. 하는 수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뜨거운 물을 끓일 전기나 밥 해먹을 연료도 없는 가난한 노인들은 꼼짝없이 집안에서 덜덜 떨고 있어야 한다. 또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또 물이 없을 때가 많다. 평소에도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아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데, 물이 꽁꽁 얼어붙어 하루 식수조차 마련하기 어렵다. 깨진 유리창 틈새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은 방안 전체를 냉동고로 만들어 버린다. 몇날며칠 씻지도 못한 상태에서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이불을 둘둘 말고 잠을 청해도 이만 덜덜 떨릴 뿐 잠이 오지 않는다. 아파트 고층에 사는 노인들은 운행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계단 내려오기가 힘들어서 바깥출입 자체가 어렵다.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변을 당하기 일쑤다. 시당에서는 노인 사망자가 급증하는 것을 파악하기는 했으나,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중심구역 주민들과 보위부, 보안원, 당 간부에게 배급할 식량을 확보하는 것만도 벅찬 상태라 취약계층에 손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선교구역에 사는 김정혜(가명)씨는 올 겨울 추위가 노인들에게 너무 혹독하다며 당의 배려를 촉구했다. 김씨는 “우리 구역에서도 노인들이 벌써 15명이 넘게 죽었다. 집에 가보면 온기라곤 하나도 없고, 불씨 하나 제대로 태우지 못하고 죽은 것 같다. 그런데 제일백화점에 가보면 물건이 그득그득해 없는 게 없고, 간부들은 다 배 불리 잘 사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한테 더 줄 게 뭐 있나. 당에서 안 줘도 잘 먹고 잘 살 사람들인데.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한테 하나라도 더 챙겨줘야 어머니 당이 최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청진 꽃제비, 온기 찾아 제철소 재무지로

살을 에는 혹한 속에 거리를 떠도는 방랑자들은 더더욱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어린 꽃제비들을 포함해 방랑하는 어른들까지 김책제철소 재무지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제철소에서 버려지는 석탄재에 남아있는 온기를 취하기 위해서다. 꽃제비들은 어디서 용케 주워 온 비닐박막을 잿더미 위에 깔고 잠을 청하는데, 간혹 불씨가 옷에 달라붙어 화재가 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제철소에서 금방 버린 석탄재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서로 챙겨 가려고 애쓴다. 방금 나온 것일수록 뜨겁고 온기가 오래 가는 게 많기 때문이다. 요새 꽃제비들은 혼자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고, 여러 명이 뭉쳐 다니는데, 갓 버려진 석탄재를 두고 패싸움을 할 때도 많다. 자기들 안에서도 너무 어리거나 몸이 약한 아이들은 각자 보살펴주거나 패싸움이 일어났을 때도 보호해준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구제소에 끌려가 생활하면 먹을 것도 없지만 규율이 심하기 때문에, 차라리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는 게 더 좋다고 한다. 어른 꽃제비들은 무리에 섞여 지내기보다는, 따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아 꽃제비 무리는 주로 10-20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낮에는 수남 시장이나 역 주위를 돌며 먹을 것을 구하고, 밤에는 김책제철소 재무지에서 생활한다.

수남시장 꽃제비들은 다 떨어진 넝마 옷을 주워 입고 다니는데, 얼굴이 하도 까매서 눈만 하얗게 빛난다. 머리는 산발에 너덜너덜해진 포대 자루 하나 뒤집어쓴 모양으로 돌아다니는 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하지 못할 행색이다. 음식 매대 옆을 수시로 지나다니며 땅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기도 하고, 손님이 음식을 건네받으려는 순간 쏜살같이 채가기도 한다. 예전에는 끝까지 아이를 쫓아가 때리기도 하고 음식을 다시 돌려받기도 했지만, 이젠 그냥 놔둔다. 시꺼먼 손으로 덮친 음식을 도저히 자기 입에 넣고 싶지 않아서 더러워서라도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올 겨울 들어 유난히 꽃제비들이 눈에 많이 띄자, 주민들의 불만도 높아가고 있다. 수남시장을 관리하는 한 보안원에 따르면,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지만 2009년과 비교해보면 작년에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해 해가 바뀐 지금은 더 늘어났다고 한다. 꽃제비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고난의 행군 시기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하는 보안원도 있다. 송평구역당 간부 한 명은 시당과 구역당에서 꽃제비 문제로 여러 차례 회의를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구제소에 넣어봤자 난방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올 겨울처럼 추운 날씨에는 차라리 재무지에서 석탄재 온기라도 쬐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당에서도 별 대책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사리원 큰 장사꾼, “길에다 100만원 뿌려야 청진 다녀올 수 있다”

황해북도 사리원 큰 장사꾼들은 요즘엔 장거리 장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길 떠나는 것 자체가 돈이 많이 드는데, 외화 값이 폭등하면서 디젤유나 휘발유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져서다. 물동량들이 대부분 10톤 내외 차량으로 움직이는데, 신의주에 가려면 40-50만 원 지출이 기본이다. 휘발유 차량은 2배 정도로 뛴다. 여기에 운전사와 장사꾼들이 먹고 자는 경비까지 더하면 이동에만 100만 원 이상 뿌려야 한다. 함경북도 청진이나 나선에 다녀오려면 경비는 더 불어난다. 그러니 웬만한 장사꾼들은 장거리 장사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금 장사를 하거나 큰 물동을 움직이는 상인들은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시장에 나가 팔거나 농촌에서 물건을 가져다 나르는 일종의 ‘달리기’ 장사를 하고 있다. 사리원에서 청진에 고구마를 내다팔고 있다는 박명학(가명)씨는 “모든 써비 돈을 뽑고도 많은 리윤을 보자면 청진 같은 데로 뛰어야 한다. 사리원시에는 곡산군과 신계군에서 생산되는 고구마가 많이 들어오는데, 자강도나 함경북도 쪽에 내다팔면 이윤이 많이 남는다. 작년 수해피해가 컸지만, 쌀, 옥수수 등 곡물 농사는 물론이고 고구마 농사가 기본적으로 잘 되는 곳이라 사리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원천이 풍부한 편이다. 작년에 수해피해로 소출이 많이 줄어 눈에 차지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부지런히 뛰고 있다”고 했다.

봉산협동농장, 작년 무단결근자 평균 40%

황해북도 봉산군 봉산협동농장의 한 일군은 작년 한 해 출근자가 평균 60%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시기에 따라 출근비율이 들쑥날쑥한데, 대체로 춘궁기에서 8월 말까지 결근율이 가장 높았다가 가을걷이 시기가 되면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작년 7월에는 농장원의 절반 이상이 결근하기도 했는데, 다들 개인 소토지 농사를 지으러 나가거나 사리원 시내에 나가 농산물을 팔러 다녔다. 무단 결근자가 속출한다는 보고를 받은 시당에서는 담당 보안서에 결근자를 무력으로라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별다른 사유 없이 장기 결근한 사람들을 구속해 교양을 하거나, 3개월 이상 결근자들은 무조건 단련대에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출근율을 높이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 농장원들 중에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 생긴 것은 2000년 7.1경제조치 이후부터다. 그 전에는 농민시장이 열릴 때 잠깐씩 다녔던 수준이라면, 경제조치 이후에는 장사를 목적으로 결근하는 사람이 생겼다. 봉산협동농장에서 17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강선정(가명)씨는 그때부터 출근율이 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도 평균 60%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농장 일을 해서 무슨 필요가 있는 가, 장사를 하면서 사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시사철 안 쉬고 피땀 흘려 일해도 식량 분배량과 현금 분배 몫이 갈수록 적어지니 사람들이 다른 돈벌이를 찾아 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봉산협동농장 농민들, “농사 안 짓고, 머슴 조개잡이 할 것”

언제부턴가 북한에서는 ‘머슴’이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봉건의 잔재를 끝장냈다고 선전하는 중앙당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머슴’과 ‘지주’는 이제 주민들의 생활언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봉이 김선달로 유명한 황해북도 봉산군 봉산협동농장에서도 머슴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농민들에게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머슴 조개잡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조개잡이를 해주고 일당으로 얼마간 받는 일을 ‘머슴 조개잡이’라고 한다. 박해성(가명)씨는 봉산협동농장에 성실하게 출근한 농민들보다 머슴 조개잡이라도 나간 농민들의 형편이 더 낫다고 했다. 초봄부터 열심히 농사를 지었던 농민들은 작년 수해 피해로 농사를 망치는 바람에 결산분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농장에서 거둔 알곡이 없어 결산총화를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 박씨는 결산총화를 한다고 해도, 전년도에 비해 분배량을 1/5도 못 받을 거라고 했다. 차라리 바닷가에 나가 머슴 조개잡이라도 나간 사람들의 집에는 먹을 게 있다는 소리가 괜한 소리가 아니다. 요령이 좀 더 좋은 사람들은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기도 했는데, 최소 3개월 이상의 식량을 마련해놓아 ‘머슴 조개잡이’보다 형편이 더 좋은 편이다. 작년에 순진하게 농사만 지었던 농민들은 이런 저런 실례들을 듣고, 올해는 일찌감치 농사 기대를 접고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거나, 바닷가에 나가 머슴 조개잡이라도 해야겠다고 말한다.

■ 여성/어린이/교육

청진 꽃제비, 온기 찾아 제철소 재무지로

살을 에는 혹한 속에 거리를 떠도는 방랑자들은 더더욱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어린 꽃제비들을 포함해 방랑하는 어른들까지 김책제철소 재무지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제철소에서 버려지는 석탄재에 남아있는 온기를 취하기 위해서다. 꽃제비들은 어디서 용케 주워 온 비닐박막을 잿더미 위에 깔고 잠을 청하는데, 간혹 불씨가 옷에 달라붙어 화재가 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제철소에서 금방 버린 석탄재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서로 챙겨 가려고 애쓴다. 방금 나온 것일수록 뜨겁고 온기가 오래 가는 게 많기 때문이다. 요새 꽃제비들은 혼자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고, 여러 명이 뭉쳐 다니는데, 갓 버려진 석탄재를 두고 패싸움을 할 때도 많다. 자기들 안에서도 너무 어리거나 몸이 약한 아이들은 각자 보살펴주거나 패싸움이 일어났을 때도 보호해준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구제소에 끌려가 생활하면 먹을 것도 없지만 규율이 심하기 때문에, 차라리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는 게 더 좋다고 한다. 어른 꽃제비들은 무리에 섞여 지내기보다는, 따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아 꽃제비 무리는 주로 10-20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낮에는 수남 시장이나 역 주위를 돌며 먹을 것을 구하고, 밤에는 김책제철소 재무지에서 생활한다.

수남시장 꽃제비들은 다 떨어진 넝마 옷을 주워 입고 다니는데, 얼굴이 하도 까매서 눈만 하얗게 빛난다. 머리는 산발에 너덜너덜해진 포대 자루 하나 뒤집어쓴 모양으로 돌아다니는 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하지 못할 행색이다. 음식 매대 옆을 수시로 지나다니며 땅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기도 하고, 손님이 음식을 건네받으려는 순간 쏜살같이 채가기도 한다. 예전에는 끝까지 아이를 쫓아가 때리기도 하고 음식을 다시 돌려받기도 했지만, 이젠 그냥 놔둔다. 시꺼먼 손으로 덮친 음식을 도저히 자기 입에 넣고 싶지 않아서 더러워서라도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올 겨울 들어 유난히 꽃제비들이 눈에 많이 띄자, 주민들의 불만도 높아가고 있다. 수남시장을 관리하는 한 보안원에 따르면,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지만 2009년과 비교해보면 작년에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해 해가 바뀐 지금은 더 늘어났다고 한다. 꽃제비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고난의 행군 시기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하는 보안원도 있다. 송평구역당 간부 한 명은 시당과 구역당에서 꽃제비 문제로 여러 차례 회의를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구제소에 넣어봤자 난방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올 겨울처럼 추운 날씨에는 차라리 재무지에서 석탄재 온기라도 쬐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당에서도 별 대책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머슴살이’여성들만 당하는 남모를 고통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하층민들은 ‘머슴살이’로 살아간다. 주로 장사꾼들이나 돈주들, 당간부들, 법기관 일군 등 잘 사는 집에서 삯벌이를 하는 일이다. 남의 집 구들이나 부엌 수리, 신발 수선, 옷 바느질, 식모살이 등 몸으로 하는 일들이다. 아주머니나 나이든 할머니들은 친척인 것처럼 위장해 잘 사는 집들에 들어가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는 등 살림을 하고, 장사하러 떠난 부모 대신 어린 자녀들을 돌본다. 30세 리명선(가명)씨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가 된 뒤 오갈 데가 없어 큰 장사꾼 집에 들어가 식모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머슴살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가 나오자 실제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머슴살이가 얼마나 고달픈지 곧 자기 신세한탄을 했다.

“차 칸에서 우연히 이 집 아저씨를 알게 됐어요. 남편 죽고 나니 제가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장사도 못하고 벌어먹을 데도 없고, 주변에 손 벌릴 사람도 없다고 얘기하니, 그럼 자기 집에서 일하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밥 짓고 빨래 해주고 집도 거둬 주면서 쌀 조금, 돈 조금 받아서 살았어요. 본가집(친정집)에 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셔서 받은 쌀이랑 돈을 가져다 드리고,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아무리 막말하고 함부로 대해도 그 재미에 힘든 것도 참고 일했어요. 그런데 이집은 아저씨가 멀리 장사 갔다 오면, 그 다음에는 아주머니가 나가는 식으로 번갈아 집을 비워요. 소학교 4학년 다니는 남자애를 내 자식처럼 거둬주었는데, 진짜 머슴처럼 사람을 천시하고 구박이 심했어요. 하루는 아주머니가 함흥으로 장사를 떠났어요. 밤중에 제가 세면장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저더러 방으로 잠깐 들어오라는 거예요. 낮에 방을 치웠는데 뭘 잘 못 찾겠다고 찾아달라는 거였어요. 방에 들어가니 아저씨가 저를 크게 생각해주는 것처럼 ‘젊은 나이에 너무 고생이 많다. 왜 다시 시집을 안 가느냐’고 손을 잡더니, 이불 속으로 저를 끌어당기는 것이었어요.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는 여자라 업신여기는 가 싶어 당장 뿌리치고 뛰쳐나왔어요. 다음날 아침에 밥을 해주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계속 자기 말을 잘 들으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나를 노리개처럼 여기는 것이었어요. 얼마 후에 아주머니가 돌아왔는데 아주머니도 자기 남편 눈치가 이상해서인지 나를 멀리 대하는 것이었어요. 이러다 이집에서 쫓겨나는 게 아닌 가 전전긍긍하게 되고, 아주머니가 아무리 욕하고 화를 퍼부어도 참을 수밖에 없어요. 죄지은 것도 없고, 내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것 같아요. 누구한테 속 시원하게 말도 못하고 혼자 얼마나 끙끙댔는지 몰라요. 남의 집에서 오갈 데 없이 밥 빌어먹고 살자니 이런 종년 취급당하는 게 억울하기만 해요.”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는 여성들 중에는 리씨처럼 봉변을 당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여성들은 처음에는 당황해하지만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져, 집주인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는 경우들도 있다. 도덕성이 밥 먹여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 달라진 세태이기도 하다. 전 같으면 손가락질하고 당국에 신소했겠지만, 지금은 다들 모른 체 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