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원산, 5일치 식량공급에 환호

강원도 원산에서는 지난 6월 중순, 농사에 동원된 녀맹원과 로동자들에게 5일치 식량을 공급해 환호성을 받았다. 장사도 안 되는 때 “가뭄에 단비를 뿌려주었다”는 반응이었다. 최명옥(가명)씨는 “큰 도움은 안 되더라도, 하루 한 끼 걱정이라도 덜어준 게 고마워 절로 웃음이 났다”고 했다. 한 농장일군은 “당장 내일 또 굶더라도 지금 먹을 수 있느니 좋아하는 거다. 5일 식량을 받고도 저렇게 기뻐하는데, 배급이 제대로 나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농촌 동원 기간 내내 아침에 죽 한 사발 후루룩 넘기고 나오니, 머리가 핑 돌아 그냥 주저앉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의 강도는 높고 뱃속은 비어 있으니 힘을 내서 일할 수가 없다. 그저 시간 때우는 식으로 일하게 된다. 한명선(가명)씨는 “모내기 기간에는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 어찌나 부려먹는지. 먹을 거 조금 주고 생색내면서 일을 강짜로 시키는 통에 며칠 몸살을 앓았다. 차라리 먹을 것을 주지 말고 장사나 다니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농사가 너무 고되 힘들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식량을 공급해주고 있어 작년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말로는 3-4일 분량이라고 하지만, 실제 받아보면 이틀 분도 안 된다. 중간에서 빼가는 간부들이 층층으로 많다보니 밑바닥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양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아무리 작은 양이라도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살 것 같다”는 반응이다. 주린 배를 안고 모내기 전투를 끝낸 주민들은 이제 다시 김매기 전투에 돌입했다.

농민들도 농장 일은 뒷전

소토지 농사에 목을 매는 것은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농민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부터 7시까지 자기 농사를 짓고, 농장에 출근한다. 점심시간에도 12시부터 2시까지 짬짬이 농사일을 하고 돌아온다. 공장 노동자들이나 녀맹원들은 장사도 할 수 있지만, 농민들은 장사하기가 쉽지 않아 농사가 거의 유일한 생계원이다. 김장복(가명)씨는 “뼈 빠지게 1년 꼬박 일해도 5-6개월 치도 못 되는 분배량 밖에 못 받는데, 누가 이악스럽게 농장 일을 하려고 하겠나”고 했다. 자기 농사를 하면 아무리 비료가 부족해도 농장 소출보다는 많이 나온다고 했다. “내가 지은 것은 확실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이 김씨의 지론이다. 온 가족이 다 소토지 농사에 매달리면 매달린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 아들, 며느리까지 농장에서 일하는데, 한창 바쁜 농번기철이라 번갈아가며 소토지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눈치껏 돌아가면서 결근하거나 일하는 도중에도 가만히 개인 농사를 짓고 온다고 했다. 오후 4시가 지나면 당당히 제 밭에 간다. 농촌에 동원 나온 사람들이 주섬주섬 장사꺼리를 들고 시장으로 향한다면, 농민들은 흙보산 비료라도 한 번 더 주려고 산에 올라간다.

“소토지 농사만이 살 길”

회령시 탄광기계공장에서는 올해 들어 부쩍 결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소토지 농사를 짓느라고 출근을 못했다. 소토지에 온종일 붙어있어도 가을 수확을 장담할 수 없는 판에 농촌동원이다 뭐다 자꾸 불러대니 아예 출근을 안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밭 옆에 비닐초막을 짓고 기거하기도 한다. 지난 5-6월 두 달 동안 비닐초막을 짓고 살다가 잡혀서 돌아온 노동자가 8명에 달했다. 이들은 “그냥 앉아서 죽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서 살려고 했다. 그것이 왜 죄가 되는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 그러면 나도 꼬박꼬박 출근도 하고, 농촌동원도 가겠다”고 항변했으나, 모두 시단련대 처벌을 받았다.

기업소마다 열흘 이상 무단결근하면 무조건 단련대 2개월 형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했다. 당국의 위협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장사와 소토지농사가 대표적인 생계방식이기 때문이다. 너무 눈치 없이 자기 일에만 매달리면 욕을 먹기 때문에, 게다가 재수 없게 걸리면 단련대 처벌까지 받아야 하므로, 마지못해 농촌동원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농장 일을 빨리 끝내고, 자기 밭으로 갈 수 있을지 궁리한다. “(개인) 농사도 못하는 상황에서 집체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차라리 자기 농사를 할 수 있게 방법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주장을 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간부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수북동에 사는 김명애(가명)씨는 “세상 쉽게 사는 게 우리 공화국 간부들이다. 백성들은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농사짓고 사는데, 간부들은 자기 수하 부려서 개인 농사를 얼마든지 쉽게 짓는다”고 지적했다.

탄광기계공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김기철(가명)씨도 얼마 전 큰 고초를 치렀다. 지금까지 당에서 하라는 일이면 군소리 없이 묵묵히 일해 온 그였지만, 처음으로 무단결근하고 소토지 농사를 지으러 갔다. 33년 동안 결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40일 동안 무단결근했다. 보안원들에게 심한 매질을 당했다. 그나마 단련대행을 면하게 된 것은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소토지)농사를 못 지으면 우리 식구 다 죽는다. 아무리 때려죽인다고 해도 다시 산에 (농사지으러) 올라갈 것”이라고 소토지 농사에 강한 의지를 비쳤다.

“남조선 비료 받을 때가 좋았지”

함경북도 온성군의 한 간부는 남조선에서 보내준 비료를 아직도 기억했다. 그때만 해도 질 좋은 비료가 공급돼 농민들이 대단히 좋아했고, 아무리 자연 재해로 농사가 안 된다고 해도 비료가 끊긴 지난 3년보다는 훨씬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때가 좋았지. 농장마다 비료가 다 돌아갔고, 소토지 농사짓는 사람들도 남조선 비료를 썼다. 농장 소출보다 소토지 농사 소출이 더 좋았던 것도 그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고 덧붙였다. 17년째 소토지 농사를 짓는 강화성(가명)씨도 “3년 전만 해도 남조선에서 비료가 들어와 쉽게 구했는데 지금은 비료를 얻는 것도 전투다. 나도 작년과 올해는 비료를 못 구해서 인분을 모아서 주고 있는데, 작년에 소출이 너무 적었다. 농사라는 게 심을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 얼마나 손도 많이 가고, 물도 자주 주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지. 화학비료 한 번이 인분비료 퍼주는 것보다 확연히 차이난다. 화학비료 1kg가 너무 아쉽다”고 했다.

비료 조달에 골머리

전국적으로 김매기 전투가 시작된 가운데, 농장마다 비료 조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방진리 협동농장에서는 지난 5월 중순, 흥남비료공장에서 비료를 받긴 했으나 턱없이 부족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령시에서는 비료를 모든 농장에 필요량만큼 나누어 줄 수 없다며 농장별로 차등지급을 하기로 했다. 논밭 면적이 많은 순서대로, 그리고 전년도 농사실적이 좋은 순서대로 비료 양을 달리 준다는 것이다. 일단 창태리와 인계리에 우선 공급하고, 산골에 위치한 풍산리, 오류리, 홍산리 등은 후순위로 놓았다. 풍산리 등지에는 아무리 비료를 줘도 소출이 많이 날 수 없는 환경이라서다. 농장 일군들은 인분을 모아 만든 흙보산 비료라도 대려고 하지만, 대체로 회의적이다. “흙보산 비료가 비료냐. 양동이로 몇 번을 퍼부어도 비료 구실도 못하는데, 괜히 헛수고 하는 것”이라는 핀잔만 들을 뿐이다. 시당에서는 관내에서 생산되는 물비료를 공급하고 있지만 이 또한 해결책이 안 된다. 작년에 물비료를 써본 농장들로부터 별 도움이 안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새별, 온성, 은덕, 무산 등 국경연선지역들은 그나마 중국 쪽에 기대하고 있다. 힘 있는 기관들에서 들여오는 중국산 화학비료가 시장에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회령시 풍산리의 한 농장일군은 “해마다 농촌 경영 위원회와 시당 전원 회의에서 알곡 계획을 얼마 하겠다고 떠드는데 비료를 적게 주면 다 소용 없다. 이래서 어떻게 강성대국을 하겠다고 큰소리 칠 수 있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풍산리 자체가 시내에서도 가장 농사가 잘 안 되는 곳이고, 지금까지 알곡 계획을 수행한 적도 없어서 공급받는 비료도 얼마 안 되니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 시당에서 배분하는 비료는 농장 기사장들이 책임지고 각 작업반에 공급해주는데, 역시 비리가 나타난다. 관리자들이 비료를 빼돌려 소토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료를 빼돌리다가 걸려 철직되는 일군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비료가 도착하는 기차역에서부터 해당 농장까지 제아무리 보안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보안원들이 개입해 빼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조선이여, 비료 좀 주오

북한 농촌에서는 천금만큼 귀해진 비료 때문에 3년 전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평양 상류층 빼고는 간부들부터 군인들까지 가히 모든 국민이 장사와 소토지 농사로 연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 정부에서 해마다 보내주던 30만 톤의 비료는 농장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어왔다. 농장에 공급되는 비료 중 일부가 시장으로 흘러나와 개인 농사짓는 사람들에게까지 건너갔다. 2008년 남한 정부가 비료 지원을 중단하면서 직접 타격을 받은 것은 북한 정부라기보다는 평범한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이“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노래처럼 부르는 이유이다. 보통 비료는 3월에 지원해야 제 때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남한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면, 민간단체들을 통해서라도 얼마든지 비료를 지원해 줄 수 있다. “비료는 군(軍) 전용 가능성이 낮아 지원할 수 있다”고 했던 것도 다름 아닌 남한 정부이지 않았던가. 한 톨의 곡식이 아쉬운 북한 주민에게 우리의 비료지원은 큰 힘이 될 것이다.

■ 식량소식

원산, 5일치 식량공급에 환호

강원도 원산에서는 지난 6월 중순, 농사에 동원된 녀맹원과 로동자들에게 5일치 식량을 공급해 환호성을 받았다. 장사도 안 되는 때 “가뭄에 단비를 뿌려주었다”는 반응이었다. 최명옥(가명)씨는 “큰 도움은 안 되더라도, 하루 한 끼 걱정이라도 덜어준 게 고마워 절로 웃음이 났다”고 했다. 한 농장일군은 “당장 내일 또 굶더라도 지금 먹을 수 있느니 좋아하는 거다. 5일 식량을 받고도 저렇게 기뻐하는데, 배급이 제대로 나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농촌 동원 기간 내내 아침에 죽 한 사발 후루룩 넘기고 나오니, 머리가 핑 돌아 그냥 주저앉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의 강도는 높고 뱃속은 비어 있으니 힘을 내서 일할 수가 없다. 그저 시간 때우는 식으로 일하게 된다. 한명선(가명)씨는 “모내기 기간에는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 어찌나 부려먹는지. 먹을 거 조금 주고 생색내면서 일을 강짜로 시키는 통에 며칠 몸살을 앓았다. 차라리 먹을 것을 주지 말고 장사나 다니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농사가 너무 고되 힘들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식량을 공급해주고 있어 작년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말로는 3-4일 분량이라고 하지만, 실제 받아보면 이틀 분도 안 된다. 중간에서 빼가는 간부들이 층층으로 많다보니 밑바닥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양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아무리 작은 양이라도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살 것 같다”는 반응이다. 주린 배를 안고 모내기 전투를 끝낸 주민들은 이제 다시 김매기 전투에 돌입했다.

■ 사회

농민들도 농장 일은 뒷전

소토지 농사에 목을 매는 것은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농민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부터 7시까지 자기 농사를 짓고, 농장에 출근한다. 점심시간에도 12시부터 2시까지 짬짬이 농사일을 하고 돌아온다. 공장 노동자들이나 녀맹원들은 장사도 할 수 있지만, 농민들은 장사하기가 쉽지 않아 농사가 거의 유일한 생계원이다. 김장복(가명)씨는 “뼈 빠지게 1년 꼬박 일해도 5-6개월 치도 못 되는 분배량 밖에 못 받는데, 누가 이악스럽게 농장 일을 하려고 하겠나”고 했다. 자기 농사를 하면 아무리 비료가 부족해도 농장 소출보다는 많이 나온다고 했다. “내가 지은 것은 확실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이 김씨의 지론이다. 온 가족이 다 소토지 농사에 매달리면 매달린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 아들, 며느리까지 농장에서 일하는데, 한창 바쁜 농번기철이라 번갈아가며 소토지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눈치껏 돌아가면서 결근하거나 일하는 도중에도 가만히 개인 농사를 짓고 온다고 했다. 오후 4시가 지나면 당당히 제 밭에 간다. 농촌에 동원 나온 사람들이 주섬주섬 장사꺼리를 들고 시장으로 향한다면, 농민들은 흙보산 비료라도 한 번 더 주려고 산에 올라간다.

“소토지 농사만이 살 길”

회령시 탄광기계공장에서는 올해 들어 부쩍 결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소토지 농사를 짓느라고 출근을 못했다. 소토지에 온종일 붙어있어도 가을 수확을 장담할 수 없는 판에 농촌동원이다 뭐다 자꾸 불러대니 아예 출근을 안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밭 옆에 비닐초막을 짓고 기거하기도 한다. 지난 5-6월 두 달 동안 비닐초막을 짓고 살다가 잡혀서 돌아온 노동자가 8명에 달했다. 이들은 “그냥 앉아서 죽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서 살려고 했다. 그것이 왜 죄가 되는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 그러면 나도 꼬박꼬박 출근도 하고, 농촌동원도 가겠다”고 항변했으나, 모두 시단련대 처벌을 받았다.

기업소마다 열흘 이상 무단결근하면 무조건 단련대 2개월 형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했다. 당국의 위협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장사와 소토지농사가 대표적인 생계방식이기 때문이다. 너무 눈치 없이 자기 일에만 매달리면 욕을 먹기 때문에, 게다가 재수 없게 걸리면 단련대 처벌까지 받아야 하므로, 마지못해 농촌동원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농장 일을 빨리 끝내고, 자기 밭으로 갈 수 있을지 궁리한다. “(개인) 농사도 못하는 상황에서 집체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차라리 자기 농사를 할 수 있게 방법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주장을 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간부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수북동에 사는 김명애(가명)씨는 “세상 쉽게 사는 게 우리 공화국 간부들이다. 백성들은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농사짓고 사는데, 간부들은 자기 수하 부려서 개인 농사를 얼마든지 쉽게 짓는다”고 지적했다.

탄광기계공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김기철(가명)씨도 얼마 전 큰 고초를 치렀다. 지금까지 당에서 하라는 일이면 군소리 없이 묵묵히 일해 온 그였지만, 처음으로 무단결근하고 소토지 농사를 지으러 갔다. 33년 동안 결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40일 동안 무단결근했다. 보안원들에게 심한 매질을 당했다. 그나마 단련대행을 면하게 된 것은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소토지)농사를 못 지으면 우리 식구 다 죽는다. 아무리 때려죽인다고 해도 다시 산에 (농사지으러) 올라갈 것”이라고 소토지 농사에 강한 의지를 비쳤다.

■ 경제활동

“남조선 비료 받을 때가 좋았지”

함경북도 온성군의 한 간부는 남조선에서 보내준 비료를 아직도 기억했다. 그때만 해도 질 좋은 비료가 공급돼 농민들이 대단히 좋아했고, 아무리 자연 재해로 농사가 안 된다고 해도 비료가 끊긴 지난 3년보다는 훨씬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때가 좋았지. 농장마다 비료가 다 돌아갔고, 소토지 농사짓는 사람들도 남조선 비료를 썼다. 농장 소출보다 소토지 농사 소출이 더 좋았던 것도 그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고 덧붙였다. 17년째 소토지 농사를 짓는 강화성(가명)씨도 “3년 전만 해도 남조선에서 비료가 들어와 쉽게 구했는데 지금은 비료를 얻는 것도 전투다. 나도 작년과 올해는 비료를 못 구해서 인분을 모아서 주고 있는데, 작년에 소출이 너무 적었다. 농사라는 게 심을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 얼마나 손도 많이 가고, 물도 자주 주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지. 화학비료 한 번이 인분비료 퍼주는 것보다 확연히 차이난다. 화학비료 1kg가 너무 아쉽다”고 했다.

비료 조달에 골머리

전국적으로 김매기 전투가 시작된 가운데, 농장마다 비료 조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방진리 협동농장에서는 지난 5월 중순, 흥남비료공장에서 비료를 받긴 했으나 턱없이 부족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회령시에서는 비료를 모든 농장에 필요량만큼 나누어 줄 수 없다며 농장별로 차등지급을 하기로 했다. 논밭 면적이 많은 순서대로, 그리고 전년도 농사실적이 좋은 순서대로 비료 양을 달리 준다는 것이다. 일단 창태리와 인계리에 우선 공급하고, 산골에 위치한 풍산리, 오류리, 홍산리 등은 후순위로 놓았다. 풍산리 등지에는 아무리 비료를 줘도 소출이 많이 날 수 없는 환경이라서다. 농장 일군들은 인분을 모아 만든 흙보산 비료라도 대려고 하지만, 대체로 회의적이다. “흙보산 비료가 비료냐. 양동이로 몇 번을 퍼부어도 비료 구실도 못하는데, 괜히 헛수고 하는 것”이라는 핀잔만 들을 뿐이다. 시당에서는 관내에서 생산되는 물비료를 공급하고 있지만 이 또한 해결책이 안 된다. 작년에 물비료를 써본 농장들로부터 별 도움이 안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새별, 온성, 은덕, 무산 등 국경연선지역들은 그나마 중국 쪽에 기대하고 있다. 힘 있는 기관들에서 들여오는 중국산 화학비료가 시장에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회령시 풍산리의 한 농장일군은 “해마다 농촌 경영 위원회와 시당 전원 회의에서 알곡 계획을 얼마 하겠다고 떠드는데 비료를 적게 주면 다 소용 없다. 이래서 어떻게 강성대국을 하겠다고 큰소리 칠 수 있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풍산리 자체가 시내에서도 가장 농사가 잘 안 되는 곳이고, 지금까지 알곡 계획을 수행한 적도 없어서 공급받는 비료도 얼마 안 되니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 시당에서 배분하는 비료는 농장 기사장들이 책임지고 각 작업반에 공급해주는데, 역시 비리가 나타난다. 관리자들이 비료를 빼돌려 소토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료를 빼돌리다가 걸려 철직되는 일군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비료가 도착하는 기차역에서부터 해당 농장까지 제아무리 보안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보안원들이 개입해 빼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