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수해 식량과 복구 장비가 시급하다

근 한 달 동안 정신없이 쏟아진 물 폭탄에 북한 전역에서 절망의 한탄소리가 가득하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장마와 제5호 태풍 ‘메아리’, 그리고 제9호 태풍 ‘무이파’에 이르기까지 집중폭우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무섭게 몰아쳤다. 북한 정부는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피해 상황을 공개하고,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했다. 국제적십자사(IFRC)에서는 일단 3천여 개의 응급구호세트를 지원하고, 기타 필요 물자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 8월 3일, 생필품 및 의약품 등 50 억 원 상당의 물품 지원을 북측에 제의했다. 북한 정부가 지원을 요청하고, 남한 정부가 재빨리 화답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상호협의하고, 합의점을 찾아 하루빨리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수재민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식량과 마실 물이다. 주민들은 올해 유난히 힘든 춘궁기를 보냈다. 도시 주민들은 작년부터 장사가 안 돼 고단한 상반기를 보냈고, 농민들은 6월 말 햇감자가 나올 때까지 풀죽으로 연명해야 했다. 8월에 나올 옥수수만 바라보고 버텨왔는데, 집중폭우에 옥수수 대가 꺾이고 옥수수 밭이 형체 없이 사라졌다. 상수도에까지 범람한 흙탕물에 식수조차 마땅치가 않다. 수인성전염병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춘궁기를 거쳐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주민들에겐 당장 먹을 음식과 맑은 물, 그리고 의약품이 필요하다. 특히 황해남도 지역에서는 탁아소, 유치원 등이 완파 혹은 반파된 곳이 많아 영유아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도로와 철도, 제방 등 공공시설과 침수 주택 등을 개보수할 수 있도록 건설 자재와 복구 장비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지난 7월 29일, 서울시는 우면산 산사태가 났을 때 국방부 등의 협조를 받아 약 2,000여 대의 복구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 굴착기와 대형 트럭 외에도 소방차와 70여대의 펌프, 체인톱 등 각종 장비가 있었기에 토사와 뿌리째 뽑힌 나무, 자갈 등을 4-5일 만에 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중장비로도 거대한 바위나 통나무 등을 치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북한의 수해 복구 현장에는 제대로 된 장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른아이, 여자남자 할 것 없이 그저 지게와 삽, 곡괭이를 들고 맨손으로 복구 작업에 나설 뿐이다. 대민지원을 나선 군인들도 허기진 상태에서 무거운 버럭을 옮기지 못해 허덕거리는 형편이다. 토사를 퍼 올릴 굴삭기와 흙을 실어 나를 대형 트럭, 그리고 논밭에서 물을 빼낼 양수기와 발전기가 절실하다. 주택 개보수에 필요한 시멘트와 철근 등 건설 자재도 필요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다. 이번 물폭탄에 남한 수재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북한 동포들을 생각해보자. 최고의 복구 장비와 식량, 기초의약품 등이 신속하게 지원되어도 수재민들의 상실감과 아픔은 결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하물며 맨 몸으로 황무지를 맞닥뜨려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들에게는 당장의 배고픔과 전염병이 가장 무서운 적(敵)이다. 가을 수확을 전혀 기대할 수 없어, 앞으로의 생계 문제를 생각하면 더욱 절망적이다. 당장은 임시 거처나 비닐움막에 몸을 피신할 수 있지만, 곧 계절이 바뀌면 찬바람을 막을 집도 절실하다.

식량과 시멘트 등 물자와 장비를 요청한 북한 정부의 요청에 한국 정부는 영유아용 간식, 과자와 초코파이, 라면을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저쪽은 심장수술 장비를 요청하는데, 여기에서는 손가락 상처에 바를 연고를 주겠다고 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남아야 하는 것은 결국 인정(人情)이다.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는 식량과 식수, 의약품, 그리고 수해 복구를 위한 건설 자재, 그리고 중장비 등을 지원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하루빨리 덜어주었으면 한다

■ 시선집중

강원도 논밭도 순식간에 황무지로

올 여름 집중폭우는 강원도도 비껴가지 않았다. 평강군, 철원군, 이천군 등지에서는 지난 7월 30일, 시간당 5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천군 개천리에서는 2천 정보의 옥수수밭이 침수되었고, 대부분의 논밭이 흙버럭에 깔려 황무지로 변했다. 룡정리에서는 약 700정보의 옥수수밭이 폐허로 변했다. 강원도는 황해남도와 달리 산간지대여서 주로 옥수수와 고구마, 콩 등을 많이 심는데, 이들 농작물의 피해가 컸다. 옥수수 대가 모두 꺾여 죽어버렸고, 고구마와 콩 작물들도 토사에 묻혀 찾을 길이 없다. 평강군, 철원군, 이천군 주민들 대부분은 화전을 일구어 소토지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지난 6-7월에는 햇감자로 겨우 지탱해오던 주민들은 8월부터 수확하게 될 옥수수 농사에 정성을 기울여왔다. 이번 피해로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어지자,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걱정뿐이다. 철원군에서는 인명피해도 심각했다. 산골짜기에서 골물이 터지면서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쳐 민가 70여 세대가 순식간에 쓸려갔고,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속출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급히 움막으로 피신했지만,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아이들도 먹지 못해 학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유치원, 탁아소 등도 쓸려가 현재 영유아들을 돌볼 곳도 마땅치 않다. 강원도 도당에서는 시급히 복구 작업에 나섰으나, 황해남도와 마찬가지로 식량과 복구 장비 및 자재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민들 피해가 제일 심해

수해를 입은 뒤 제일 살기 어려워진 것은 농민들이다. 일반 주민들은 장사를 잘 하건 못하건 얼마간 돈이라도 벌지만, 농민들은 장사를 할 수가 없어 오직 농장에서 짓는 조합 농사와 개인 소토지 농사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야 하는데 수해로 모두 쓸려가 버렸기 때문이다. 청단군 심평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정희철(가명)씨는 “이번 폭우로 집이 무너지고 얼마 안 되는 소토지 농사 밭도 쓸려 내려가 버렸다. 지금껏 하루 2끼 겨우 죽으로 먹고 살아왔는데, 가을(수확)을 해도 소출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벌써 눈앞이 캄캄하다. 일단 몸만이라도 움막으로 피신했는데 지금은 여름이라 괜찮지만, 곧 날이 추워지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살아갈 낙이 없다”고 걱정했다. 한금옥(가명)씨는 옥수수 대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매일 소토지에 나가보지만, 눈물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산사태로 흙더미에 묻힌 옥수수 대를 주워 올려 봐도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다. 농장 기술 일군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물에 잠긴 벼 대를 애써 세워본다 한들, 알곡이 맺힐 것 같지 않다며 수확량이 얼마나 급감할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수해복구 동원에 장삿길 막혀

황해남도 강령군, 배천군, 청단군 등지에서는 주민들이 총동원돼 수해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주부들과 학생들은 농작물 살리는 작업에 투입되었고, 공장 노동자들은 끊어진 교각과 다리, 철도 복구에 나섰다. 복구 장비가 없으니 흙으로 파인 땅을 메우려고 해도 순전히 여성과 아이들이 등짐으로 운반해야 한다. 또 벼 대를 세우고 벼 대에 묻은 감탕을 씻어내는 작업도 맨 손으로 한다. 노동자들도 무거운 버럭을 운반해 끊어진 도로나 철길에 쏟아 붓고 있다. 인민무력부의 지시에 따라 4군단 산하 부대들도 복구 작업에 나섰다. 군인들은 가장 힘든 땅 파기나 버럭 처리 같은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허기진 상태에서 무거운 버럭을 나르는 일은 군인이라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주민들은 “먹어야 힘이 나서 일하겠는데 당장 밥 가마에 넣을 옥수수쌀도 없어 굶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며 복구 작업을 힘들어한다. 청단군 청단읍에 사는 조순실(가명)씨는 “도당과 군당 간부들이 현지에 나와 지도 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자기들 손끝에는 흙 한 번 묻히지 않고, 그저 몇 명이 나왔는지 숫자나 파악하고 있다”며 간부들의 안일한 태도에 불만을 표했다. 자신들은 장사도 못하고 복구에 동원됐는데, 먹고 살만한 간부들은 일하는 시늉도 안한다는 것이다. 청단읍의 경우 수해가 난 뒤 일주일 동안 시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 수해복구가 시작된 뒤에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복구 작업에 동원됐다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시장에 나갈 수가 있다. 배천군 배천읍 시장에서 공업품을 팔고 있는 리금숙(39세)씨는 “매일 시장에 나가고 있지만, 며칠째 옷 한 벌 못 팔아 단돈 100원도 못 벌고 장세만 꼬박꼬박 내고 있다. 하루를 살자면 최소 2,000원은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벌이가 안 되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길이 없다. 수해까지 나서 농사가 수포로 돌아갔으니, 식량 값이 더 치솟지 않을지 걱정”이라며 근심하는 모습이다.

정부 관료들도 망연자실

황해남도 곳곳에서 도로와 철길이 유실되면서 기차 운행이 중단되는 등 교통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강령군에서 해주시로 나가는 도로는 약 1,000m 구간이 물에 잠겨 끊어졌고, 산사태로 20m 높이의 버럭이 쌓여 철도 운행이 중단되었다. 중앙당 큰물피해복구지휘부에서는 곳곳에서 도로가 막히고 통신망이 끊겨 피해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현재 그 구간을 드나드는 간부들의 보고를 듣고 짐작하면서 판단하고 있다. 말만 들어도 주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지 모른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손 쓸 도리가 없어서 시급히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하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 도당과 군당 간부들은 피해 농가와 이재민들의 안정을 위해 각 현장에 나가 선전 사업을 하고, 무너진 집을 보수하고 새로 건설하는 등 복구 사업을 독려하고 있다.

중앙당 차원에서 이재민 돕기와 수해 복구를 독려하고 있으나 복구 장비와 건설 자재, 식량 등 복구사업에 필요한 자원은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황해남도 도당의 한 간부는 “시멘트와 목재 같은 건설 자재가 부족해 집을 짓거나 보수하자고 해도 애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먹을 식량도 없고, 기계 설비와 중장비 같은 것이 있으면 물에 침수된 농경지 강둑을 퍼내어 인차 물을 뽑겠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걸리는 상태여서 집 잃은 농민들을 안정시키는 데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수리 보수를 하자고 해도 자재가 없어 못한다”며 수해 복구의 고충을 토로했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는 한 지방당에서도 손 쓸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중앙에서도 이번 피해 상황에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할 정도로 심해서 이제 국제지원밖에 더 이상 바랄 데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에 피해 지역을 더 공개해서 하루빨리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해외원조에 기대감을 표했다.

인명피해 속출, 이재민들은 먹을 것 호소

인명피해도 심각하다. 황해남도 도당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관내에서 행방불명되거나 사망한 주민이 200여 명에 달한다. 강령군과 청단군, 배천군에서는 완파한 살림집이 벌써 2,000세대를 훌쩍 넘었다. 이재민들은 급히 농장 부속 건물에 피신했다. 배천군에서는 감탕에서 발견되는 시체들을 수습하느라 복구 작업이 한층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도 많고,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자도 많다. 시체가 썩으면서 풍기는 악취와 각종 병균 번식을 우려해 위생방역소에서는 소독수와 생석회 등을 구해 살림집 구역에 집중 살포하고 있다. 강령군에서는 학교 건물의 피해도 심했다. 지붕과 벽체가 무너지거나 교실이 진흙과 물에 잠겨 4-5일 동안 수업을 중단하고, 농장 건물로 피신하기도 했다. 피해 학교들은 농장관리위원회의 도움으로 회의실을 비롯한 일부 건물에서 임시 수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이재민들은 춘궁기 때도 배를 곯았지만, 집마저 잃은 상태에서 배고픔이 더 심하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당장 몸을 의지할 곳이 없어진데다, 몹시 허약한 상태에서 수인성 전염병 등에 걸려 앓다가 사망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황해남도 도당위원회에서는 이재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청단군에 사는 김판석(가명)씨는 “위에서 도와주는 것은 없고, 부닥친 난관을 순전히 백성들이 자체 힘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 생활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상황에서 더욱 최악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라며 절망스러워 했다.

5시간 물 폭탄에 5만여 정보 침수

지난 7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친 집중폭우로 황해남도 주요 곡창지대의 농경지 침수 피해가 심각하다. 특히 강령군과 배천군, 청단군은 폭우가 쏟아진 지 5시간 만에 약 5만 5천 여 정보가 물에 잠겼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재난이라 많은 농장들이 미처 손 쓸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청단군 심평리와 남촌리 협동 농장은 갑자기 밀려들어온 큰물에 논벼가 뿌리째 뽑혀 없어지고, 대부분의 논밭이 순식간에 자갈밭으로 변해 형체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청단군의 한 농장 일군은 “물을 아무리 열심히 뽑아내도, 이게 논밭인지 쑥대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논밭이 1만 5,000정보나 된다. 물에 밀려 쓰러진 벼 대를 일으켜 세우고 감탕도 씻어 내고 있지만 벼들이 이미 누런색으로 변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다”고 피해 상황을 전했다. 강령군은 옥수수밭을 비롯해 약 3만 여 정보의 논밭이 침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큰물과 산사태로 밀려든 흙더미에 곡식들이 깔려 감히 건져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번 물 폭탄 피해로 피해지역들에서는 가을 수확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태다.

과자와 라면 지원, 유감이다

남한은 올 여름 유례없이 기나긴 장마와 강도 높은 집중폭우, 그리고 연이은 태풍 피해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서울이라고 해서 피할 수는 없었다. 광화문과 테헤란로, 강남 일대가 물에 완전히 잠겼고, 우면산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나 주민들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컸다. 수재민들에게 가장 시급했던 것은 바로 먹을 것과 식수, 의약품, 그리고 복구 장비와 인력 등이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들에게 과자와 라면, 영유아용 간식만 지원한다고 생각해보자. 적절한 지원이라고 납득할 사람이 남한 국민 중에 과연 있을까?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에 수해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준의 피해를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먼저 요청해야 지원해줄 수 있다고 했던 한국 정부로선 지원을 안 해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지원물품이다. 북한 정부와 한국 정부는 가장 필요한 지원 물품부터 협의해 하루빨리 수재민 구제에 힘써주길 바란다.

■ 사건사고

강원도 논밭도 순식간에 황무지로

올 여름 집중폭우는 강원도도 비껴가지 않았다. 평강군, 철원군, 이천군 등지에서는 지난 7월 30일, 시간당 5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천군 개천리에서는 2천 정보의 옥수수밭이 침수되었고, 대부분의 논밭이 흙버럭에 깔려 황무지로 변했다. 룡정리에서는 약 700정보의 옥수수밭이 폐허로 변했다. 강원도는 황해남도와 달리 산간지대여서 주로 옥수수와 고구마, 콩 등을 많이 심는데, 이들 농작물의 피해가 컸다. 옥수수 대가 모두 꺾여 죽어버렸고, 고구마와 콩 작물들도 토사에 묻혀 찾을 길이 없다. 평강군, 철원군, 이천군 주민들 대부분은 화전을 일구어 소토지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지난 6-7월에는 햇감자로 겨우 지탱해오던 주민들은 8월부터 수확하게 될 옥수수 농사에 정성을 기울여왔다. 이번 피해로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어지자,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걱정뿐이다. 철원군에서는 인명피해도 심각했다. 산골짜기에서 골물이 터지면서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쳐 민가 70여 세대가 순식간에 쓸려갔고,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속출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급히 움막으로 피신했지만,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아이들도 먹지 못해 학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유치원, 탁아소 등도 쓸려가 현재 영유아들을 돌볼 곳도 마땅치 않다. 강원도 도당에서는 시급히 복구 작업에 나섰으나, 황해남도와 마찬가지로 식량과 복구 장비 및 자재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민들 피해가 제일 심해

수해를 입은 뒤 제일 살기 어려워진 것은 농민들이다. 일반 주민들은 장사를 잘 하건 못하건 얼마간 돈이라도 벌지만, 농민들은 장사를 할 수가 없어 오직 농장에서 짓는 조합 농사와 개인 소토지 농사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야 하는데 수해로 모두 쓸려가 버렸기 때문이다. 청단군 심평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정희철(가명)씨는 “이번 폭우로 집이 무너지고 얼마 안 되는 소토지 농사 밭도 쓸려 내려가 버렸다. 지금껏 하루 2끼 겨우 죽으로 먹고 살아왔는데, 가을(수확)을 해도 소출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벌써 눈앞이 캄캄하다. 일단 몸만이라도 움막으로 피신했는데 지금은 여름이라 괜찮지만, 곧 날이 추워지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살아갈 낙이 없다”고 걱정했다. 한금옥(가명)씨는 옥수수 대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매일 소토지에 나가보지만, 눈물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산사태로 흙더미에 묻힌 옥수수 대를 주워 올려 봐도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다. 농장 기술 일군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물에 잠긴 벼 대를 애써 세워본다 한들, 알곡이 맺힐 것 같지 않다며 수확량이 얼마나 급감할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수해복구 동원에 장삿길 막혀

황해남도 강령군, 배천군, 청단군 등지에서는 주민들이 총동원돼 수해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주부들과 학생들은 농작물 살리는 작업에 투입되었고, 공장 노동자들은 끊어진 교각과 다리, 철도 복구에 나섰다. 복구 장비가 없으니 흙으로 파인 땅을 메우려고 해도 순전히 여성과 아이들이 등짐으로 운반해야 한다. 또 벼 대를 세우고 벼 대에 묻은 감탕을 씻어내는 작업도 맨 손으로 한다. 노동자들도 무거운 버럭을 운반해 끊어진 도로나 철길에 쏟아 붓고 있다. 인민무력부의 지시에 따라 4군단 산하 부대들도 복구 작업에 나섰다. 군인들은 가장 힘든 땅 파기나 버럭 처리 같은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허기진 상태에서 무거운 버럭을 나르는 일은 군인이라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주민들은 “먹어야 힘이 나서 일하겠는데 당장 밥 가마에 넣을 옥수수쌀도 없어 굶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며 복구 작업을 힘들어한다. 청단군 청단읍에 사는 조순실(가명)씨는 “도당과 군당 간부들이 현지에 나와 지도 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자기들 손끝에는 흙 한 번 묻히지 않고, 그저 몇 명이 나왔는지 숫자나 파악하고 있다”며 간부들의 안일한 태도에 불만을 표했다. 자신들은 장사도 못하고 복구에 동원됐는데, 먹고 살만한 간부들은 일하는 시늉도 안한다는 것이다. 청단읍의 경우 수해가 난 뒤 일주일 동안 시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 수해복구가 시작된 뒤에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복구 작업에 동원됐다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시장에 나갈 수가 있다. 배천군 배천읍 시장에서 공업품을 팔고 있는 리금숙(39세)씨는 “매일 시장에 나가고 있지만, 며칠째 옷 한 벌 못 팔아 단돈 100원도 못 벌고 장세만 꼬박꼬박 내고 있다. 하루를 살자면 최소 2,000원은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벌이가 안 되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길이 없다. 수해까지 나서 농사가 수포로 돌아갔으니, 식량 값이 더 치솟지 않을지 걱정”이라며 근심하는 모습이다.

정부 관료들도 망연자실

황해남도 곳곳에서 도로와 철길이 유실되면서 기차 운행이 중단되는 등 교통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강령군에서 해주시로 나가는 도로는 약 1,000m 구간이 물에 잠겨 끊어졌고, 산사태로 20m 높이의 버럭이 쌓여 철도 운행이 중단되었다. 중앙당 큰물피해복구지휘부에서는 곳곳에서 도로가 막히고 통신망이 끊겨 피해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현재 그 구간을 드나드는 간부들의 보고를 듣고 짐작하면서 판단하고 있다. 말만 들어도 주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지 모른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손 쓸 도리가 없어서 시급히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하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 도당과 군당 간부들은 피해 농가와 이재민들의 안정을 위해 각 현장에 나가 선전 사업을 하고, 무너진 집을 보수하고 새로 건설하는 등 복구 사업을 독려하고 있다.

중앙당 차원에서 이재민 돕기와 수해 복구를 독려하고 있으나 복구 장비와 건설 자재, 식량 등 복구사업에 필요한 자원은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황해남도 도당의 한 간부는 “시멘트와 목재 같은 건설 자재가 부족해 집을 짓거나 보수하자고 해도 애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먹을 식량도 없고, 기계 설비와 중장비 같은 것이 있으면 물에 침수된 농경지 강둑을 퍼내어 인차 물을 뽑겠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걸리는 상태여서 집 잃은 농민들을 안정시키는 데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수리 보수를 하자고 해도 자재가 없어 못한다”며 수해 복구의 고충을 토로했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는 한 지방당에서도 손 쓸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중앙에서도 이번 피해 상황에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할 정도로 심해서 이제 국제지원밖에 더 이상 바랄 데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에 피해 지역을 더 공개해서 하루빨리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해외원조에 기대감을 표했다.

인명피해 속출, 이재민들은 먹을 것 호소

인명피해도 심각하다. 황해남도 도당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관내에서 행방불명되거나 사망한 주민이 200여 명에 달한다. 강령군과 청단군, 배천군에서는 완파한 살림집이 벌써 2,000세대를 훌쩍 넘었다. 이재민들은 급히 농장 부속 건물에 피신했다. 배천군에서는 감탕에서 발견되는 시체들을 수습하느라 복구 작업이 한층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도 많고,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자도 많다. 시체가 썩으면서 풍기는 악취와 각종 병균 번식을 우려해 위생방역소에서는 소독수와 생석회 등을 구해 살림집 구역에 집중 살포하고 있다. 강령군에서는 학교 건물의 피해도 심했다. 지붕과 벽체가 무너지거나 교실이 진흙과 물에 잠겨 4-5일 동안 수업을 중단하고, 농장 건물로 피신하기도 했다. 피해 학교들은 농장관리위원회의 도움으로 회의실을 비롯한 일부 건물에서 임시 수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이재민들은 춘궁기 때도 배를 곯았지만, 집마저 잃은 상태에서 배고픔이 더 심하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당장 몸을 의지할 곳이 없어진데다, 몹시 허약한 상태에서 수인성 전염병 등에 걸려 앓다가 사망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황해남도 도당위원회에서는 이재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청단군에 사는 김판석(가명)씨는 “위에서 도와주는 것은 없고, 부닥친 난관을 순전히 백성들이 자체 힘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 생활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상황에서 더욱 최악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라며 절망스러워 했다.

5시간 물 폭탄에 5만여 정보 침수

지난 7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친 집중폭우로 황해남도 주요 곡창지대의 농경지 침수 피해가 심각하다. 특히 강령군과 배천군, 청단군은 폭우가 쏟아진 지 5시간 만에 약 5만 5천 여 정보가 물에 잠겼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재난이라 많은 농장들이 미처 손 쓸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청단군 심평리와 남촌리 협동 농장은 갑자기 밀려들어온 큰물에 논벼가 뿌리째 뽑혀 없어지고, 대부분의 논밭이 순식간에 자갈밭으로 변해 형체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청단군의 한 농장 일군은 “물을 아무리 열심히 뽑아내도, 이게 논밭인지 쑥대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논밭이 1만 5,000정보나 된다. 물에 밀려 쓰러진 벼 대를 일으켜 세우고 감탕도 씻어 내고 있지만 벼들이 이미 누런색으로 변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다”고 피해 상황을 전했다. 강령군은 옥수수밭을 비롯해 약 3만 여 정보의 논밭이 침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큰물과 산사태로 밀려든 흙더미에 곡식들이 깔려 감히 건져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번 물 폭탄 피해로 피해지역들에서는 가을 수확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