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활동

수재민들, 한국 지원 모포와 시멘트에 감사 – 2006년 12월

현재 수해 지역에는 충분치는 않아도 한국에서 지원한 모포와 시멘트가 공급되었다. 주민들은 이남에서 보낸 따뜻한 정성에 기쁨과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지원 물량이 충분치 못해 한국 지원 시멘트가 살림집 건설 현장에 모두 공급되지는 못하고, 양덕 읍에 있는 아파트 건설장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수해 피해 상황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다보니 한국에서도 지원 물량을 가늠하기 어려워 충분하게 지원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긴급지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읍내에 사는 한 70대 노인은 “핏줄은 속일 수 없구만. 나도 전쟁 시기에 여기로 오다나니 동생들이 남조선에 있는데 그 애들도 이 형을 생각하며 지원을 했으리라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나오. 우리나라가 정말 어려운 때에 이렇게 남조선 형제들의 지원물자를 받고 보니 동생 생각에 눈물만 나오.”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남한 동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내비쳤다.

주위에 듣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느 때 같으면 반동이라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반박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해로 집과 살림살이를 모두 잃고 현재 초막에서 덮을 것 한 장 없이 지내던 한 제대 군인 역시 모포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 “모포가 정말 좋구나. 그런데 만날 죽이자고 하던 남조선 물건을 받아도 되는가? 우린 언제면 이런 모포를 마음대로 만들까?”라며 걱정하면서도 지원 물자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45호)

신양․양덕 지구, 한국 지원 시멘트로 살림집 건설 한창 – 2006년 12월

수해가 난 지 벌써 4개월이 넘고 있는 요즘도 신양과 양덕 지구는 수해 복구에 여념이 없다. 특히 신양군은 수해로 읍내 아파트와 단층 주택이 약 1/3 가량 파괴되었을 정도로 여타 지역보다 건물이 가장 많이 파괴된 지역이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살림집을 건설해야 하므로 어린아이, 노인, 여성 할 것 없이 전 주민이 살림집 건설에 총동원되고 있다. 한국에서 지원한 시멘트가 살림집 건설에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철근을 비롯한 건축 자재와 운반수단, 건설장비가 부족해 건축 속도는 느린 편이다. 오로지 노동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고 있다.

인민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은 오후 수업 대신 모래, 자갈 등을 모아 운반하는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살림집 복구가 끝나는 날까지 쉬는 날도 없이 노력 동원에 참가해야 하는 어린 학생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양과 양덕지구는 산간지역이라 벌써 추위가 시작되었는데, 수재민들은 한국에서 지원한 모포와 전국 각지에서 보내 준 옷가지들로 추위를 근근이 이겨나가고 있다. (45호)

양덕군 수해 참상 속속 전해져 – 2006년 12월

북한 당국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양덕군의 수해 피해 규모와 실태가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도 점차 전해지고 있다. 양덕군은 이번 수해로 전체 인구의 약 20% 이상이 사망했으며, 실종자들은 아직까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해 당시 기름 저장 탱크들이 물에 떠내려가다 다리 기둥에 부딪혀 폭발이 일어나고, 직매점이 무너지기도 했다.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방안에서 쇠창살을 쥔 채 죽어간 가족들도 있었다. 도둑을 방지할 목적으로 설치한 쇠창살 때문에 창문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 갇혀 어이없이 일가족이 몰살당한 것이다. 당시 다른 곳에 있어 다행히 목숨을 건진 세대주가 물이 빠진 뒤 집안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와 아내, 딸이 모두 쇠창살을 거머쥔 채 죽어있는 참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누가 누구에게 위로를 건넬 수도 없을 만큼 이런 참상이 비일비재했다. 수해 복구를 위해 노력 동원 나온 황해북도 주민들은 양덕 주민들의 피해 참상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황해북도 지역에서 온 지원자들은 수재민들의 생활 형편이 너무도 딱해 지원물자를 애초 계획보다 더 많이 모아주기도 했다. (45호)

수해로 양덕에 묶인 열차 승객, 90여 명 아사 – 2006년 12월

수해 당시 양덕의 지수 역을 지나던 평양-청진간 23열차와 신의주-청진 행 열차가 철길이 끊어지고 교량이 파괴되는 바람에 한 달 반 이상 묶여 있었다. 그러는 동안 당시 열차에 탔던 승객 중 90여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23열차의 여객 전무 역시 청진에 도착하자 이틀 만에 병사했다. 수해 지역의 구제사업이 비교적 신속하게 전개되었으나, 열차 승객들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여비가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는 승객들 중에 비교적 젊거나 건장한 남성들은 가까운 민가나 그나마 온전한 옥수수밭, 감자밭에 나가 서리를 해먹었으나,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노인과 아이들, 여성들은 힘없이 죽어갔다. 승객들은 깊은 산골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지치고 병들어 사망했다. 국가 보위부와 철도성에서 사망자들을 조용히 운반해 소문이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으나, 희생자의 가족들을 통해 소식이 퍼지고 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양덕 지역의 피해상황이 다른 지역에 퍼지지 않도록 임시 복구된 열차를 야간에만 운행하도록 조처한 바 있다. 열차 승객들이 양덕 지구의 참상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45호)

북한 당국, 수재민 보호 대책 없어 고민 – 2006년 12월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수재민들의 생계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 간부들의 논의만 계속되고 있다. 신양과 양덕지구에는 그나마 최우선적으로 식량이 공급되다보니 아직까지 꽃제비들이 많지 않으나, 살림집 건설이 늦어지고 지원 식량이 떨어지면 꽃제비와 사망자가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재민들은 현재 밭이나 산기슭, 무너진 집터에 초막이나 비닐박막으로 임시거처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 또 밤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땔감나무와 덮을 만한 모포와 입을 옷가지들, 그리고 겨울을 날 수 있는 비축 식량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수재민들은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생활 조건을 안정화시키지 못하면 죽음 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 나서고 있다. (45호)

수해 지역 식량공급 언제 끊길지 몰라 – 2006년 12월

수해 지역 식량공급 언제 끊길지 몰라

수해 지역에서는 식량이 들어오는 대로 2일, 3일, 5일분씩 공급해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식량 공급이 잘 되고 있으나, 언제까지 공급이 계속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수해 피해로 식량 수확량이 작년의 절반도 되지 않은 약 200만 톤 가량 되지 않겠냐는 아주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북한 전체 수해 지역에 공급할 쌀이 바닥나면 수재민들이 집단 아사하거나 병사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이 시장에서 곡식을 사먹을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당국에서는 식량 배급이 끊어질 경우 무엇보다 탈북 등 주민들의 대량 이동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국제사회가 제재조치를 취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먹을 것도 없는 수준에 아까운 돈만 날려 보낸다”며 국가 정책에 반감을 표하는 주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45호)

양덕지구, 하루 20시간 전기 줘도 주민들은 암흑세계

양덕, 신양 등 수해 피해 지역은 빠른 수해 복구를 위해 국가적으로 전력 공급을 다른 지역보다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주로 무력부와 2경제에 공급하던 안변청년발전소의 전기를 이 지역에 하루 20시간 이상 공급하고 있어 전력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한 여타 지역에 비하면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수재민들은 여전히 깜깜한 암흑세계에 살고 있다. 건설 현장에 전력이 공급되고 있지만, 수재민들이 임시 거처로 머물고 있는 초막까지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없기 때문이다. (45호)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사건 증가 – 2006년 12월

전국적으로 보안원, 보위원, 검사 등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살인사건이 올해 들어서만 벌써 500여 건이 넘는다. 보안원과 보위원, 검사 등은 법과 국가 방침을 직접 집행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원한 관계에 쉽게 노출되는 편이다. 국가정책에 따라 처벌을 한다고 하지만 주민들의 법적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이에 억울함을 풀 길 없는 당사자나 그 부모, 형제, 친척들이 원한을 품고 우발적이거나 의도적인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살해당한 법관들은 대체로 주민들에게 평판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다.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 사건이 늘어나고 있으나 당과 사법기관에서는 이 사실이 밖으로 돌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하면서 불문에 부치고 있다. 그러나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이런 사실을 짐작 못하는 주민들은 없다. (45호)

사리원 지역의 옥수수 값 전국 최저 – 2006년 12월호

사리원 시장의 옥수수 가격이 전국에서 제일 싸다. 곡산과 신계군에서는 수해피해로 농사가 작년보다 잘 안 되었다고 해도 다행히 옥수수 소출이 많아 옥수수 1kg당 200원이라는 최저가에 판매되고 있다. 이 지역의 옥수수가 사리원 시장에 많이 팔리고 있다. 사리원은 곡창지대라 식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아 상대적으로 식량 가격이 비싸지 않은 편이다. 황해남도의 쌀과 옥수수, 고구마를 자강도나 평안남도, 함경남북도 지역에 가져가 팔면 장사 이윤이 많이 남겠지만, 유통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에 큰 장사꾼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 7-10톤짜리 트럭으로 운반하자면 1kg에 30원씩 해서 10톤이면 30만 원 이상이 들고, 여기에 100만 원 이상의 유류비와 숙식비까지 더 하면 150만 원은 우습게 깨진다. 아무리 쌀 10톤을 청진에 팔아 3-400만원의 이윤을 본다고 해도, 사리원 지역의 금 장사나 돈주들이 아니면 시도할 꿈도 못 꾸는 일이다. (45호)

■ 시선집중

수재민들, 한국 지원 모포와 시멘트에 감사-2006년 11월

수재민들, 한국 지원 모포와 시멘트에 감사

현재 수해 지역에는 충분치는 않아도 한국에서 지원한 모포와 시멘트가 공급되었다. 주민들은 이남에서 보낸 따뜻한 정성에 기쁨과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지원 물량이 충분치 못해 한국 지원 시멘트가 살림집 건설 현장에 모두 공급되지는 못하고, 양덕 읍에 있는 아파트 건설장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수해 피해 상황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다보니 한국에서도 지원 물량을 가늠하기 어려워 충분하게 지원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긴급지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읍내에 사는 한 70대 노인은 “핏줄은 속일 수 없구만. 나도 전쟁 시기에 여기로 오다나니 동생들이 남조선에 있는데 그 애들도 이 형을 생각하며 지원을 했으리라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나오. 우리나라가 정말 어려운 때에 이렇게 남조선 형제들의 지원물자를 받고 보니 동생 생각에 눈물만 나오.”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남한 동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내비쳤다. 주위에 듣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느 때 같으면 반동이라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반박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해로 집과 살림살이를 모두 잃고 현재 초막에서 덮을 것 한 장 없이 지내던 한 제대 군인 역시 모포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 “모포가 정말 좋구나. 그런데 만날 죽이자고 하던 남조선 물건을 받아도 되는가? 우린 언제면 이런 모포를 마음대로 만들까?”라며 걱정하면서도 지원 물자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신양 양덕 지구, 한국 지원 시멘트로 살림집 건설 한창-2006년 11월

신양 양덕 지구, 한국 지원 시멘트로 살림집 건설 한창 수해가 난 지 벌써 4개월이 넘고 있는 요즘도 신양과 양덕 지구는 수해 복구에 여념이 없다. 특히 신양군은 수해로 읍내 아파트와 단층 주택이 약 1/3 가량 파괴되었을 정도로 여타 지역보다 건물이 가장 많이 파괴된 지역이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 살림집을 건설해야 하므로 어린아이, 노인, 여성 할 것 없이 전 주민이 살림집 건설에 총동원되고 있다. 한국에서 지원한 시멘트가 살림집 건설에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철근을 비롯한 건축 자재와 운반수단, 건설장비가 부족해 건축 속도는 느린 편이다. 오로지 노동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고 있다.

인민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은 오후 수업 대신 모래, 자갈 등을 모아 운반하는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살림집 복구가 끝나는 날까지 쉬는 날도 없이 노력 동원에 참가해야 하는 어린 학생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양과 양덕지구는 산간지역이라 벌써 추위가 시작되었는데, 수재민들은 한국에서 지원한 모포와 전국 각지에서 보내 준 옷가지들로 추위를 근근이 이겨나가고 있다.

한 노동당원이 보내온 편지- 2006년 11월

한국의 지원은 민중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나가야만 서로의 기대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동포들이 보내준 지원물자인 시멘트, 모포, 옷가지, 약품과 식량이 수해지역 수재민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그 지원물자를 받고 물보다 진한 피, 핏줄이 같은 한국의 동포들을 감사히, 뜨겁게 생각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도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처럼 혹심한 수해를 입고도 어려운 동족을 살리기 위해 성의껏 보내준 한국동포들의 뜨거운 지원물자가 비록 정치적 제약에 지장을 받기도 했으나, 어쨌든 수재민들에게 전달되었고 동포애의 정을 깊이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북조선 정계나 한국의 정계에도 서로의 래왕과 교류, 협조와 지원, 통일을 바라는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싫어하고 방해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 해도 불순한 마음을 가진 정치가들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이야 무엇 때문에 원쑤처럼 등지고 멀리하며 살고 싶겠습니까. 민심은 이미 서로를 향해 있습니다. 수해 피해의 그 처참하고 어려운 시기에 한 핏줄을 나눈 한 강토의 형제들이 보내준 지원물자는 북조선 주민들에게 동포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게 하였으며 재생의 길로 나가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난 시기 다른 나라에서도 지원을 받아봤지만, 그 나라들은 준다는 명목으로 그것도 자기 나라의 리해 관계를 따져가며 생색내는 데 불과했으나, 이번의 지원물자는 아무런 의도도 없이 어려운 동족을 살리려는 뜨거운 민족애의 표현이었기에 주민들과 정계에서도 감사히 기쁘게 받고, 동포에 대한 믿음을 크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살기 어려워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낯 설은 남의 땅에서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다 조국 반역자의 루명을 쓰면서까지도 한국에로의 탈북기도를 한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오직 그곳만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살자고 고생하며 한 핏줄을 나눈 형제를 믿고 한국으로 간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당 간부인 우리들도 한국에 쓸리는 민중의 기대와 백성은 안중에 없이 정치권을 지탱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정계의 어지러운 처사를 분리해보는 눈은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의 지원은 민중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나가야만 서로의 기대와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봅니다. 지치고 약해지는 백성들을 멀리한다면 서로의 전망은 암담해질 것입니다.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 시들어가고, 가족과 사회가 날로 파산되어 가는데 정부는 여전히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민심은 천심이며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했는데, 한국 동포들의 기대에 우리가 보답하고 우리의 믿음을 한국의 동포들이 지켜주어 다가오는 려명의 날을 함께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믿습니다. 분단 50년 동안의 쓰리고 아픈 마음을 마음껏 터놓고 온 겨레가 다 모여서 이 세상을 자랑하며 살아갈 날이 오리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부디 저버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논평

북한 동포는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2006년 11월

북한 동포는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보낸 수해 물품이 무사히 수해 피해 지역에 당도해 분배되고 있다. 비닐 천막이나 옥수숫대로 대충 지붕 얼개를 만든 초막에서 덮을 천 한 장 없이 벌벌 떨고 있던 수재민들에게 한국에서 지원한 시멘트와 따뜻한 모포, 옷가지, 약품, 식량 등은 깊은 감동과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시멘트 양이 충분치 않아도, 우선 읍내 아파트부터 다시 세우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밤중에 잠자다 옷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목숨을 구했던 수재민들에게 모포와 옷가지들은 유일하게 추위를 막아줄 소중한 재산이 되고 있다.

“우리처럼 혹심한 수해를 입고도 어려운 동족을 살리기 위해 성의껏 보내 준 남조선 동포들의 뜨거운 지원물자”에 진정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수재민들은 “물보다 진한 피, 핏줄이 같은 남조선 동포들에게 뜨거운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했다. “수해 피해로 처참하고 어려운 시기에 한 핏줄을 나눈 한 강토의 형제들이 보내 준 지원물자로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재생의 길로 나가도록 용기를 주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한국의 지원물품을 어떠한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어려운 동족을 살리기 위해 보낸 ‘뜨거운 민족애의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수재 이후 근근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 동포들은 남쪽 동포들이 보내준 지원을 그들의 ‘희망’으로 삼고 있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이 ‘희망’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토록 간절한 ‘희망’이 지속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목숨을 부지한 채 추운 한겨울을 넘길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쌀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쌀도 내년 2월이면 바닥을 보일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으로 다행히 한숨 돌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북핵 문제, 위조지폐 문제, 북한인권 문제 등 쉽게 풀리기 어려운 난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북한 동포들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우리의 도움을 삶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따뜻한 지원이 더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남조선 동포들의 지원만이 우리 수재민들을 기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출로인 것 같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인도적 지원을 그 어떤 정치적 명분으로도 중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정치적으로 계산해서 지원하는 지원은 인도적 지원이 아니다. 전쟁 속에서도 적지의 부녀자와 노인들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인도적 지원이다. 이런 정신과 원칙에서 한국 정부는 이제라도 인도적 지원을 하루속히 재개해야 한다. 수해 피해 실태에 대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구심이 있거든 북한 당국에게 실태를 정확히 보고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실태 공개를 주저한 것은 강성대국과 선군정치체제의 자존심이 훼손당하기 싫은 이유도 있지만, 한국 정부가 그동안 일관성 없이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사안에 따라 처리해 온 탓도 크다.

남북관계는 앞으로도 개인 날 과 흐린 날을 수없이 반복할 것이다. 관계가 나빠졌다고 지원을 중단하고, 좋아질 조짐이 나타났다고 금방 지원을 재개하다가는 명분도 잃고 신뢰도 잃게 된다. 북핵 실험의 충격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인도적 지원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이제부터 인도적 지원은 철저히 정치적 사안과 분리해서 실행해야 한다. 뜸들이거나 망설여서도 안 된다. 북한 동포들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얇은 비닐 천막 안에서 우리가 준 모포 한 장에 의지해 혹한에 떨며 죽어가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의 대대적인 인도적 지원을 다시 한 번 간곡히 요청한다. 지금 북한 동포는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