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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서 춤추다’ 이정희님과의 만남

DMZ에서 춤추다’ 이정희님과의 만남

노옥재(좋은벗들 사무국장)

무대에는 보기에도 답답할 정도의 커다란 탁구대같은 탁자가 꽉 차게 놓여있다. 그 물체 양편으로 여러명이 나뉘어져 군무를 추고 있다. 양편의 춤사위는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가슴을 끓이며 이어졌고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서로가 마주보며 진행되는 몸동작에 격한 울렁임과 함께 자유롭고 싶고 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그렇게 춤사위는 양편이 한쌍이 만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탁자 양편의 군사들이 서로 만나고 얼싸않는 모습이 많아지고 남북한의 무용과 예술이 교차 비교되었다. 거추장스러워진 탁자는 천장에서 내려온 쇠줄에 들려지기 시작했고, 천장 높이 올라가면서 탁! 두동강이 나면서 무대는 훤해지고 무대 뒷면까지도 훤하게 두쪽으로 갈라지면서 야외가 보였다. 그 시원함이라니! 훤하게 탁트인 무대, 밖에까지 열린 공간! 우리에게 등돌려졌던 영혼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무용은 막을 내렸다.

난 그렇게 이정희선생님을 만났다. 연극 일을 하던 후배덕에 연극을 보러갔다가 “DMZ”라는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DMZ을 무용으로 한다니, 도대체 어떻게 표현을 하지, 누가 이런 걸 작픔으로 만들었지’하는 궁금함은 연극을 보여준 후배에게 나같은 사람이 안보면 누가 보냐며 무용을 꼭 보게 해달라며 생때를 썼다.

무용을 본 후, 나는 이런 무용은 우리와 같이 통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안보면 누가 보느냐며 언젠가 이 분을 꼭 모셔서 말씀과 공연을 들으리라 결심했다.

11기 통일대화마당을 기획하면서 난 이정희 선생님을 모시고 싶다고 강하게 의견을 말했다. 무용이라면 모르지만, 강의는 어렵다는 선생님의 간곡한 사양과 담당간사의 몇차례에 걸친 부탁 속에 아주 어렵게 포스터에 선생님의 이름과 강연제목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섭외한 이정희 선생님의 강의가 있던 날은 한국과 포르투갈이 16강을 두고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강의를 예정대로 진행하느냐는 이정희선생님의 몇차례 우려섞인 문의와 함께 수강생이 안올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대화마당은 비상대책을 세웠다.

강의날, 제자와 함께 온 선생님은 모든 실무진이 참여한 가운데 당신이 이제껏 엮어온 무용세계를 펼쳐 보였다. 몸동작이 가진 의미를 참여한 사람들에게 직접 몸짓을 통해 느껴보라고 말씀하시면서, 80년대부터의 공연한 작품들, DMZ에서 공연한 작품의 비디오를 보면서 설명했다. 절규하는 원혼들의 소리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철원 노동당사로, 푸른 대지와 바닷가에 쳐진 철망에서의 안타까움으로 번져갔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예술관을 가지신 이정희 선생님은 푸른 현대 무용단 예술감독과 한국현대무용춤 연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민족의 큰 문제이며, 아픔과 슬픔인 분단 문제를 작품으로 다루어오기 전부터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그동안 해왔다. 그 출발은 다름 아닌 뉴욕에서 공부를 마치던 해인 80년, 한인 가게를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된 광주항쟁의 사진에서였다. 무고한 젊은이들이 죽어서 길거리에 쌓여있고 시체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군인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어찌할바를 몰라 껑충껑충 뛸 수 밖에 없었고,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너무나 끔찍하고 가슴아픈 현실 앞에서 “무용가로서 무엇을 해야하는가”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한국에 돌아와 시작한 작품들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일깨워서 저승으로 천도하는 내용이 담긴 살푸리 1로 시작해, 매년 살푸리를 하고 그 안에 새로운 사회의 문제를 담아내더니 살푸리 9까지 이어졌다. 그 안에 분단의 문제가 들어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었다.

선생님은 살푸리 시리즈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무용의 만남을 만들었다. 무대안에서만의 무용이라는 기존 형식의 틀을 깨고 봄이면 생동하는 자연의 에너지를 듬뿍 담아 자연을 무대삼아 ‘봄날 문밖에서 춤을’ 시리즈로 하게 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바깥세상을 향해 내달리던 춤은 마라도, 제주도, 울릉도, 독도에서 비무장지대까지 이어지고 더 이상 못가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앞에서 답답하게 멈추어야 했다.

“조국이 반으로 갈라지고 서로 적대하고 미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전 비무장지대에 자주 갑니다. 그곳은 아주 조용하고 고요한 곳이예요. 철조망 앞에 서 있으면 앞을 향해 막 뛰어가고 싶습니다. 철조망 너머의 동해바다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막 나보고 오라고 이리 오라고 하는데… 그리고 바다를 출렁거리는 파도는 넘쳐서 마치 철조망을 넘어오려 하는 것 같더군요. 눈물도 많이 나더군요.”

무용가로서의 이정희 교수님에게 분단의 아픔은 오감을 넘어 육감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 온 몸으로 느껴내기에 다른 누구보다 분단의 아픔은 더 직접적이고 아리도록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통일이 될 때까지 분단을 주제로 작품을 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어쩌면 당연해보였지만, 분단과 통일을 형상화하는데 천착하는 열정과 깊이에 고마움의 눈물이 핑돌았다. ‘운동가’로서 아니라 “그저 안할 수가 없어”하면서 자신의 평생 과정임을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오히려 더 가슴아픈 현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주었다.

요즈음은 시대가 변하고 해서 사람들이 개인의 문제, 사랑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고, 마치 분단문제는 한물 간듯하다. 그러나 선생님은 통일을 다루면서도 식상하거나 지루하지 않도록 시대를 앞서가며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분단의 슬픔, 아픔을 넘어서 밝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이정희 선생님. 많은 대중들과 만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선생님의 바램은 우리에게 새로이 보여질 다음 무용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