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정(서울대학교 독문과)

얼마 전 공군에 복무중인 학과동기를 만났다. 걱정 반 장난 반으로 “살만해? 군대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1백명이 넘는다며?”라고 물었더니 “군대에서 신참 때 자살이나 탈영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어딨냐? 그래도 고참되면 괜찮아”라고 이제 상병이 된 친구는 대답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일 나이에 군대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짐과 동시에 이제 그 질서에 익숙해져버린 친구를 보며 마음이 씁쓸해졌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문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나 가족이 군대를 갔다왔느냐가 선거정책보다 더 큰 이슈가 되고, 군대를 안간다고 했다간 연예인 생활도 끝장나는 사회이다. 태극전사라고 칭송받던 월드컵선수들도 병역특혜얘기가 나오자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오태양이라는 사람이 감히 “난 양심에 따라 군대에 가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는 병역거부문제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소수의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 한 불교신자의 병역거부선언과 지난 3월 26일 법원의 현행 병역법에 대한 위헌 심판 재청으로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 부각이 된 것이다.

4월 17일부터 시작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수요캠페인’을 6차례 진행하면서도 ‘너 군대 갔다왔느냐’, ‘니들이 군대안가면 나라는 누가 지키란 말이냐’는 식의 반응에 힘들기도 하였다. 마치 나만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이기주의로 보는 시선을 바꿔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우리들이 이렇게 외면받는 것일까’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헌법에서 규정한 병역의 의무와 헌법 19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

‘신성한’ 국방의 의무 앞에서 개인의 양심의 자유는 ‘내심의 자유’만 인정할 수 있다며 군사법원은 지금까지 4천명에 가까운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전쟁의 도구가 되는 것을, 살인하는 훈련을 받는 것을 거부하며 스스로 감옥에 가길 선택한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자신만의 몸보신을 위해 병역을 기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4월에 열린 58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한국정부도 함께 채택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9개월 징병제를 실시하면서도 대체 복무제가 정착되어 있고 그마저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으며, 남한과 상황이 비슷한 대만에서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봉사를 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어야 하고, 전과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사면·복권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체복무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가 그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으로 이익을 얻고 있는 몇몇 사람만 빼고 전세계인 모두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상을,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발걸음을 한걸음씩 끊임없이 내딛을 것이다.